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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김영옥] "조용히 하십시오. 바로 앞에 적이…"

<40> 연막탄①

영옥의 100대대 나폴리 떠나 프랑스행 수송선단에 몸 실어
독일군 거짓 정보 퍼트리며 미군 공격 기다리고 있어
사단장 오판으로 전진했다가 엄청난 사상자 발생


영옥이 나폴리를 떠나 프랑스로 가는 수송선단에 몸을 실은 것은 1944년 9월말이었다. 100대대는 달포 전 남프랑스에 상륙한 연합군을 보강하기 위한 증원군에 속해 있었다. 미군 지휘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프랑스에 있는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남프랑스에서도 동시에 상륙작전을 벌여 프랑스 남북에서 동시에 2개의 전선을 열려고 했으나 영국군의 반대로 남프랑스 상륙은 연기됐었다.

원래 연합군의 남프랑스 상륙은 클라크 장군이 이끌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탈리아 전선을 매듭짓지 못한 클라크 장군이 자신은 이탈리아에 남는 대신 자기 휘하에 있던 3개 사단을 남프랑스 상륙군에 내주기로 합의했다. 이 때 연합군 지휘부가 파견 병력에 442연대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해 영옥도 프랑스로 가게 됐다.

수송선단이 지중해를 가르며 프랑스로 향하는 도중에도 갖가지 소문이 돌았다. "연합군이 프랑스 북부 산악지대에서 혈전을 치르고 있다더라" "독일군이 곧 붕괴된다더라" "10월 중순이면 전쟁이 끝난다더라" "아이젠아워 장군이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낼 수 있다고 암시했다더라".



선단은 나폴리를 떠난 지 사흘 만에 마르세이유에 닻을 내렸다. 뱃멀미가 심했던 영옥은 다가오는 전선을 걱정할 겨를도 없이 순조로운 항해가 고맙기만 했다. 그러나 잔잔한 호수처럼 파도조차 없던 지중해의 침묵은 프랑스 전장의 혈전을 예고하는 폭풍전야의 고요였다.

442연대는 북으로 이동해 36사단에 배속됐다. 원래 텍사스주 방위군이었기 때문에 텍사스 사단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던 36사단은 보쥬 산맥을 향해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는데 전선이 북상할수록 독일군의 저항도 더 완강해졌다. 보쥬 산맥을 넘으면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곧 바로 독일이었다. 북프랑스에 상륙했던 미군도 이때쯤 역사적으로 독일의 관문인 아아헨 지방에 이르렀고 벨기에를 거쳐 공격하던 영국군도 루르 중공업지대를 향해 공세를 계속했지만 둘 다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이 부딪혀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연합군이 독일 진입을 위해 목을 조여오자 독일군은 총력을 다해 라인지역 전체를 방어했다. 독일군으로서는 연합군의 본토 침공을 막는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히틀러가 옥쇄 명령을 내렸다는 얘기도 들려 왔다.

보쥬 지방에서 제일 큰 두 도시는 에삐날과 생디인데 이곳은 브뤼에르라는 작은 마을을 통과하는 철도와 도로로 연결됐다. 이 때문에 브뤼에르가 전략거점이었다. 연합군이 브뤼에르 공격을 강화하자 독일군의 반격도 거세져 전선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채 양측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영옥의 부대가 마르세이유에 상륙할 때쯤 독일군은 방어진지를 한층 강화하면서 브뤼에르를 통과하는 철도까지 폭파시켰다. 영옥의 부대가 브뤼에르 전선에 도착한 것은 이로부터 2주 후였다.

브뤼에르는 동 서 북쪽이 4개의 산으로 둘러싸이고 남쪽만 평원으로 뚫려 있는 배산임야 지형에 들어앉은 작은 마을이었다. 따라서 이 4개의 산을 점령하는 쪽이 브뤼에르의 임자였다. 미군은 작전상 편의를 위해 각각의 산에 A.B.C.D고지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 중에서도 서쪽에 있는 A고지가 제일 높아 승리의 관건이었다. A고지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100대대에 하달됐다.

공격작전은 당연히 작전참모인 영옥의 몫이었다. 대대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옥이 작전계획을 보고하면 간단히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허가를 대신했다. A고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고지 서쪽에 있는 삼림지대를 지나야만 했는데 연대장은 "숲 속에 적군이 없으므로 쉬운 작전이 될 것이라고 사단장이 말했다"고 알려왔었다. 그렇지만 지형으로 봐서 독일군이 그 숲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영옥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영옥은 북쪽에서 브뤼에르를 공격하기 돼 있던 45사단 병력과 접촉도 하고 직접 숲을 정찰하기 위해 정보참모 제임스 부드리 중위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레 숲을 헤쳐 나가던 영옥이 미군 소위가 있는 참호를 발견하고 안에 있던 소위를 부르려는 순간 소위가 급히 제스처를 쓰며 속삭였다.

"조용히 하십시오. 바로 앞에 적이 있습니다."

"귀관은 누군가?"

"45사단 179연대 G중대장입니다. 우리 중대는 불과 1주일 동안 여기 있었는데 장교라고는 저 혼자 남고 모두 죽거나 다쳤으며 병력도 4분의 1로 줄었습니다."

진흙으로 위장한 소위의 얼굴은 피곤으로 찌들어 있었다. 소위의 말이 믿기 어려운 듯 옆에 있던 부드리 중위가 다시 물었다.

"이 숲에서는 이미 적군이 철수했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저는 바로 이 자리에서 1주일 동안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영옥의 보고는 즉시 대대장 연대장을 거쳐 사단장까지 올라갔으나 사단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연대장 펜스 대령이 싱글스 대대장을 다시 무전기로 불렀다.

"나도 '영'의 보고를 믿고 싶다. 그렇지만 사단장이 막무가내다. 무조건 하루에 10km씩 전진하라는 명령이다."

사실 영옥이 알아낸 정보는 정확했다. 독일군은 숲 속에 진지를 구축해놓고 미군이 공격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군은 도처에 기관총을 배치하고 사방에 지뢰를 깔아두고 있었다. 참호도 나뭇가지와 풀을 이용해 감쪽같이 은폐돼 바로 코앞에서 부딪히기 전까지는 존재조차 알 수 없었다. 싱글스 대대장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공격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보쥬 산맥의 울창한 숲 속에서 벌어진 전투는 이탈리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숲 속 나무 위에서 터지는 포탄이 나무 줄기나 가지를 뾰족하게 부러뜨려 포탄의 파편과 함께 죽음의 폭우로 내려 뿌리면서 지상의 병사들에게는 더욱 더 가공할 위력을 나타냈다. 단 한 발의 포탄도 그 위력이 몇 배씩 더 커졌다. 참호를 아무리 깊게 파도 튼튼한 덮개가 없을 경우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삼림전투에서는 산산이 부러져 내리는 나뭇가지가 그야말로 악령이었다. 오후 4시만 돼도 숲 속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가 싶으면 곧 바로 칠흑 같은 어둠이 덮어 병사들은 자기가 들고 있는 총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숲 속에 찾아드는 어둠은 문자 그대로 암흑 그 자체였고 나무 위로 부는 바람 소리는 악마의 피리 소리였다. 솔방울 하나 떨어지는 소리에도 병사들은 머리칼을 곤두세웠다.

아직 10월이었지만 비까지 동반한 보쥬 산맥의 추위는 참으로 매서웠다. 참호는 다 파기도 전에 빗물로 채워져 참호 속에 있으면 추위가 뼈까지 파고들며 전신을 훑어 동상에 걸리는 병사들도 많아졌다. 하와이 출신이 많은 100대대 병사들에게 추위는 또 다른 저승사자였다.

100대대는 적지 않은 사상자를 내면서 간신히 삼림을 돌파했지만 A고지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다카하시 대위가 지휘하는 B중대가 두 번이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고지 근처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2대대는 B고지에 있는 독일군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아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무리 봐도 탱크 없이 공격을 계속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었다. 영옥은 공격을 중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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