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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365일 최고의 순간들

최 주 미/조인스아메리카 차장

12월은 순위 매기기에 분주한 달이다.
구글이 글로벌 트렌드 차트로 본 2014 올해의 검색어 톱10을 발표했고 타임지는 올해의 사진 100을 소개했다. 포브스는 억만장자 리스트를, 뉴욕타임스는 베스트 북 10을, 빌보드는 톱 100곡을, 롤링스톤즈는 베스트 앨범을 뽑아냈다.

베스트만 꼽는 것은 아니다. 타임지는 2014 최악의 TV쇼 10개를 집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15가지 최악의 인터넷 거짓말을 폭로했다. 최악의 영화, 최악의 게임, 최악의 건축물, 최악의 자동차 리스트들도 줄줄이 등장한다. 컨수머리포트는 아예 베스트&워스트 리스트를 동시에 가려 뽑았다.

앞으로 남은 열흘간 미디어나 그룹들이 뽑아낸 백만 가지 주제의 알록달록 2014 결산 리스트들이 앞다투어 레드카펫에 등장할 것이다. 일렬로 늘어선 리스트는 저마다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온 흔적으로, 야망과 분투를 점수 매긴 성적표로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한해의 끝에 이르러 시간의 매듭을 짓는 일은 일상을 리셋하는 효과가 분명 있다. 어제와 내일은 그저 하루의 시간차일 뿐이지만 그 이름에 작년의 딱지가 붙고 새해의 스탬프가 찍히면 남루했던 시간도 새출발을 위한 보딩 패스로 변신한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해볼까. 내 일년은 어땠나, 2014년 내 최고 수확은 무엇일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 톱10은 뭘까 따위를 흉내내 보다가 그만 시무룩 풀이 죽는다.

웹이며 미디어에서 뽑아내는 소란스러운 천국과 지옥의 결산표와 달리 우리의 한해는 돌이켜볼 특별한 무엇도 없이 그저 밍밍하기 일쑤다. 잘 나가는 친구들의 페이스북에는 프라하 여행, 임원 승진, 뉴타운으로 이사, 페친 500명 돌파, 생애 첫 홀인원 따위가 금박 입힌 활자처럼 도드라져 질투를 부르는데, 내겐 '아침에 일어나 씻고 먹고 일하고 들어와 다시 밥먹고 TV 보다 잤다'는 초등생의 밀린 방학숙제 같은 일기장 뿐인가.

아무리 기억의 뇌주름 사이를 헤집어 뒤적여도 베스트는커녕 워스트 리스트에조차 올릴 '사건' 없는 무미한 일상. 뭐가 이럴까. 금요일마다 '불금'이고 월말마다 캠핑이고 철마다 해외여행이며 집 장만, 자동차 장만에 익사이팅한 인생을 구가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이토록 가난한 일상을 부지해왔던가.

멀리서 불꽃놀이 폭죽이 터지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숨죽인 별이 꿈뻑이듯 떠있는 어두운 하늘의 정적을 만난다.

사건사고 없이 무탈하게 반복된 일상은 정말 아무 일 없는 시간이었나. 무수한 톱10 리스트를 쏟아내는 이 사회의 격랑 속에서 탈출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 그 매일이 사실은 기적이고 기록할 만한 사건은 아닐까.

웃음도 눈물도 말도 없는 시시한 시간들로 어두운 밤하늘처럼 적막한 일상을 쉼없이 이어가야만 비로소, 한번의 불꽃이 찬란하게 빛나는 날도 맞을 수 있을 것임을 생각한다.

'갓 넘은 자정 밤 /열무김치 한 토막에 /하얀 밥 한술 /불 넣어 누런 아랫목 /배부르고 등 따시어 /행복한 밤이었다 /자본가의 맏아들이 /부럽지 아니한 /밤이었다. 2013. 12. 2'

김대련 시인의 나직한 독백을 되뇌이며 나는 매일의 변함없는 일상이 내가 보낸 지난 한 해 최상의 수확이며 가려낼 것 없이 한결같은 톱 리스트 365임을 기억하기로 했다. 12월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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