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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오늘도 '손주 바보'로 산다

고남철·목사

늙으면 낙이 없다고들 한다. 사실 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이 들어서 낙을 낙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뿐이다. 감성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노년에 손주들을 주셔서 재미있게 살도록 하신 것이다. 손주들만 보면 입이 벌어지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바로 손주 바보다. 노년에 이보다 더한 낙이 있을까.

몇 주 전 손주 이불 사러 LA한인타운에 갔다.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라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것이다. 우리 이불 산다고 했으면 안 갔을 것이다. 치노힐스에서 한인타운까지 한 시간 가량 걸리고 올 때는 한 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손주들을 위한 일이라 피곤하지도 않았다. 집안에는 손주들 사진을 벽마다 걸어 놓고 찬장 유리에도 붙여 놓았다. 손주가 온다면 말끔히 집안 청소를 한다. 뒷마당 청소도 한다. 양치질도 하고 목욕도 한다. 손도 두세 번 씻는다. 손님보다 더 무섭다. 깨끗한 모습 냄새 안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한 달 전에는 파상풍 예방주사를 맞았다. 안 맞는다니까 의사가 아기가 있으면 맞아야 한다고 했다. 음식점도 손주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간다.

아내는 나보다 더 손주 바보다. 하루라도 손주들을 카톡으로 보지 못하면 안달이다. 매일 카톡으로 주고받아야 하고 영상전화해야 직성이 풀린다. 낙이 그것밖에 없나 싶을 정도다. 성경 잠언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자식은 아비의 영화니라' 했다. 손주들은 조부모들에게는 면류관이다. 먼 장래 손주들 머리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인상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손주 바보가 되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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