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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맥반석 달걀과 가래떡

이종호/논설위원

#. 삶은 달걀도 맛있지만 구운 달걀은 또 다른 맛이 있다. 흔히 맥반석 달걀이라고도 하고 찜질방 달걀이라고도 한다. 흰자는 쫀득쫀득하고 노른자도 냄새가 없어 삶은 달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많이 만든다고 하는데 길게는 6~7시간 동안 약한 불로 익혀야 할 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지난해엔 일요일 아침마다 이 달걀을 먹었다. 한 모임에서 어떤 분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구워왔기 때문이다. 송년행사 때 누군가 말했다. 1년 동안 감사한 일, 보람된 일이 많았지만 가장 '은혜가 됐던 것'은 바로 저 구운 달걀이었다고.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달걀을 보면서 진정한 헌신과 섬김이 바로 저런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단했다. "달걀은 제가 구워 오겠습니다." 연초 그냥 지나는 말처럼 한 약속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희생적으로 지켜내다니. 거기다 이런 일을 놓치지 않고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 역시 귀했다. 을미년 새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배워야 할 게 이것이다 싶었다. 내뱉은 말에 대한 약속 지키기. 그리고 긍정의 눈으로 모든 일상 바라보기.

#. LA한인타운에 세계선교교회(담임 최운형 목사)라는 40여년 된 교회가 있다. 새 목사님 부임 이후 커뮤니티를 돕는 일을 많이 해온 교회인데 지난 연말 또 하나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12월 31일 밤 송구영신 예배를 자정이 아니라 저녁 9시에 맞춰 드린 것이다. 송구영신 예배는 한해의 마지막 날 밤에 드리는,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대개 밤 11시 쯤 시작하고 새벽 한 두시쯤 집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그 교회는 저녁 8시에 시작해 밤 10시 전에 모든 것을 다 마쳤다는 것이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첫째는 안전상의 문제란다. 자정 전후 밤길 운전을 힘들어 하는 분이 많고 실제로 뉴스를 보면 사고도 흔히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송구영신 예배 때문에 교인들이 정작 새해 첫날을 늦잠으로 맞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동부시간 자정에 맞춰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이니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다.

깜짝 놀랐다.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막상 주변에서 실천하는 경우는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그 신선한 발상이라니. 이런 게 개혁이고 개선 아닌가. 내가 새해 결심으로 꼭 넣고 싶은 것도 이런 것이다. 구태의연한 습관 다시 들여다보기. 바꿔보기. 그리고 실천, 실천.

#. 1월 1일 새벽, 그리피스 천문대 뒷산에 올랐다. 을미년 첫 해맞이를 위해서였다. LA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소, 여기가 미국인가 싶을 정도로 한인들로 빼곡했다. 일출 직전 민족학교 풍물패의 한바탕 연주가 이어졌다.

이어 장엄한 해돋이를 보며 저마다 새해 결심을 다졌다. 그 다음이다. 누군가 "떡 드시고 내려가세요" 한다. 그 새벽에 산 정상까지 가래떡을 가득 해 가지고 올라온 것이다. 아, 이런 정성이! 가래떡 하나를 집어 들며 잠시 진한 감동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등산로 초입에서도 커피와 도넛을 나눠주는 분들이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의 작은 선행, 조건 없이 베푸는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우리 사회를 이만큼이나마 훈훈하게 데워 주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이다. 저마다 새 꿈을 꾸고 새 계획들을 세우는 때다. 하지만 변화와 발전을 이루는 것은 어떤 거창한 구호나 화려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남 탓 말고 나부터 바뀌는 것, 약속은 지키고 쉬운 일부터 실천에 옮기는 것, 그리고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작은 선행이라도 베푸는 것. 새해를 맞는 나의, 우리 가족의, 아니 우리 모두의 다짐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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