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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새해덕담, 입술보다 가슴으로

구혜영/사회부 기자

새해가 되니 바라는 게 많아졌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죽 나열해보니 끝도 없다. 평소에 품어온 생각들은 달력 한 장 넘기자 그럴싸한 '새해 소망'이 됐고, 분위기에 휩쓸려 여러 번 공개발표도 했다. 바라는 건 내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이메일.카드를 통해 '바랍니다', '빕니다', '기원합니다' 등과 같은 희망동사를 쏟아낸다. 그 중에 진심은 과연 몇 %나 될까.

누구나 하는 인사에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바라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왔을 때 가지는 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특히 상대에게 부담감과 불편(불쾌)함을 줄 때, 그런 바람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나이.직급.인종.연봉.성별 등으로 그 상황에 가둬버리는 것이야말로 '갑질' 아니던가. 뻔뻔한 소망타령에 치이다 보니 무언가를 바라는 게 무서워진다.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은 서운한 것도 많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논리를 사랑하며 억지스럽게 같은 감정을 기대한다. "널 생각해서 말하는 거야"란 문장으로 시작해서 결국 자신이 의도한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법으로 남을 재단한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쟨 글렀어"란 한마디로 끝난다.

최근 덕담이랍시고 자주 듣게 되는 말 중에 '대충 둥글게'란 말이 있다. "너보다 더 살아봤는데 뭐든 대충 맞추고, 둥글게 사는 게 답"이라고 말하는 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분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더는 젊은 나이도 아니고, 하나하나 따지려 하지 말라.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르려고 노력해라. 대세를 거스르지 마라." 이해가 되지않아 이유를 물었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남들도 다 이렇게 했고, 다 이렇게 살아."



물론 그 말 속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뻣뻣하게 있다가 부러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 속에서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그 소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지난달 취재 갔다가 마음을 울린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소개한다. 수년 전 크리스마스, 한 교회에서 아동보호국에 맡겨진 위탁아동들과 함께하는 파티를 열었다. 그곳에 참석한 한 한인은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선물 박스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한 아이를 보게 된다. 그는 아이에게 왜 선물을 열어보지 않고 머뭇거리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한 5분쯤 뜸을 들이다가 "고마워 해야하는데…내가 원하는 선물이 아니어서 웃을 수 없을까봐 열어보는 게 겁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의 말을 듣고 고마움을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바라다'란 동사는 입술보다는 가슴으로 하는 기도에 가깝다. 아끼고 아껴서 진심으로 하고 남에게 바라는 걸 강요하지 말자. 소망은 욕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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