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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표현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인가

이종호/논설위원

오래전 한국에서 근무할 때다. 그때도 가끔 신문사를 항의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사나 칼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때로는 한두 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이기까지 한다. 온갖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어깨띠까지 두른 채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해댈 땐 금세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이 살벌했다.

편집국 안에서도 흔히 접하던 풍경이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수화기를 들면 "야, 이 XX야. 네가 기자야?" 다짜고짜 막말부터 튀어나온다. "아, 그게 아니고…" 뭐라 대꾸를 하려 해도 막무가내다. "너, 이 XX. 그냥 안 둬. 각오해."

물론 대개는 그것으로 끝이다.(아니, 별다른 일도 있었다. 1988년 당시 중앙일보 자매지였던 중앙경제 오홍근 사회부장이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라는 칼럼을 썼다가 기사 내용에 불만을 품은 육군정보사 요원으로부터 피습, 중상을 입었다.)

한국만큼은 아니어도 미국에서도 신문사 성토는 비슷했다. 몇년 전 이런 일도 있었다. 타운의 한 교회가 분규로 시끄러울 때였다. 특정 교회의 내분을 시시콜콜 보도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판단한 우리 신문은 더 이상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자 얼마 뒤 그 교회 일부 신도들이 몰려왔다. "왜 이런 중요한 것에 침묵하느냐, 너희가 도대체 신문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다른 신문사에도 신도들이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그 신문은 교회 사태를 연일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반대쪽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왜 그런 것까지 보도하느냐, 신문이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면서.



요즘은 이렇게까지 험한 풍경은 잘 없다. 인터넷 댓글이라는 또 다른 배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댓글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글에는 입에 담지 못할 무지막지한 악평이 따른다. 협박과 조롱, 인신공격도 난무한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타인의 생각을 대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나와 의견이 같으면 좋은 기사, 다르면 엉터리. 나와 성향이 맞으면 좋은 신문, 그 반대면 나쁜 신문….

연초 세계를 경악시킨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 참사도 결국은 이런 심리의 확대판이다. 나와 다른 생각, '우리'를 모독하는 표현은 어떻게든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맹신과 야만이 12명이나 되는 인명을 앗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은 언제나 옳기만 했나 하는 반성도 해 보게 된다. '언론자유'의 이름으로 누군가의 인격이나 자존감에 모욕과 상처를 주지는 않았던가.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꼭 필요하지도 않는 일을 들추어내 갈등을 유발하고 분열을 획책하지는 않았던가. 사실과 다른 부정확한 내용으로 진실을 은폐하지는 않았던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피 흘려 쟁취해 온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도 공동의 이익 범위 안에서 정의롭게 발현될 때이다.

미국의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지만 그렇다고 특정 인종이나 종교, 집단 등에 대한 증오, 폭력 선동까지 보호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언론.출판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선언하지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표현의 자유는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배려와 긍휼이 없는 표현의 자유는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꽹과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신문 글만이 아니라 일상의 말 한마디가 다 그렇다.

약간의 외도는 있었지만 올해로 신문사 생활 26년째다. 그 동안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언론을 향해 목청을 높였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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