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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늙어서는 '영감-할멈' 밖에 없다

이 종 호/논설위원

한국 극장가의 또 하나 이변 소식이 들려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관객 500만명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다큐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워낭소리(2008년 개봉, 293만명)'를 훌쩍 뛰어 넘은 대기록이다.

76년을 해로한 98세 할아버지와 89세 할머니의 맑은 사랑과 애틋한 이별을 다룬 영화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부부의 소중함과 결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영화였어요." "얼마나 울었던지 극장 안이 온통 눈물바다였습니다." "우리도 저렇게 오래 오래 서로 위하며 살고 싶어요." 부부 사랑에 그만큼 목말라 하고 있다는 반증일까. 이혼율 세계 최고의 나라에서 연출되고 있는 역설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연초 미국에서도 흐뭇한 외신 하나가 눈길을 붙들었다. 흔히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부부가 1월 6일 결혼 7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91살인 아버지 부시와 한 살 아래인 부인 바버러 부시 여사. 이들은 결혼 55주년이던 2000년부터 역대 미국 대통령 최장의 부부해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2위는 부시 전 대통령과 동갑인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로 올해가 결혼 69년주년이다.)

'아버지 부시' 부부는 1945년 결혼해 모두 6명의 자식을 두었다. 현 오바마 대통령의 직전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69)는 그의 큰 아들이다. 둘째 아들 젭 부시(62)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사실상 차기 대권행보를 시작한 상태다. 이렇게 미국 최고의 정치 명문가를 이룬 가문이지만 솔직히 그것보다는 부부가 '건강하게' 70년이나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더 대단해 보였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면서 타운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가정법 전문변호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60~70세 한인들의 이혼 상담이 의외로 많습니다. 건강 장수시대가 되다 보니 억지로 마음고생 하며 참고 사느니 이제라도 남은 인생 좀 더 의미 있게 살겠다는 사람들이지요."

하긴 이런 황혼이혼은 한국에선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한국 대법원의 '2014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 현재 결혼 20년차 이상 부부의 황혼이혼은 3만2433건으로 전체 이혼에서 28.1%를 차지할 정도로 치솟았다. 이혼 사유를 보면 성격차이(47.2%)가 가장 많았고 경제문제(12.7%), 배우자의 부정(7.6%). 가족 간 불화(7%), 정신적 육체적 학대(4.2%) 순으로 뒤를 이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부부가 갈라서는 이유는 다 비슷하다는 말이다.

오죽하며 그랬을까, 이해는 간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라면 얼른 풀어야 다시 바로 낄 수 있다는 것도 맞다. 그래도 "늙어서는 영감-할멈밖에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나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 이후 30년을 어머니는 혼자 사셨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노부부가 다정하게 함께 걷는 모습이 늘 부러웠고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다. 누구에겐들 모진 세월, 거친 풍파가 없었을까. 그럼에도 끝까지 맞잡은 손 놓지 않고 함께 헤쳐 나온 부부들,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위대한가.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승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시대가 바뀌면서 결혼에 대한 인식도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있다. 혼전동거에 계약결혼, 심지어 동성결혼이라는 말조차 낯설지 않게 됐다. 세월 따라 달라지는 풍습이야 어쩌랴.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로하는 부부의 맞잡은 손만큼 아름다운 노년 풍경은 없다는 믿음은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님아 그 강을…' 영화가 미국에 오면 76년을 함께 산 노부부를 꼭 만나 봬야겠다. 이제 '겨우' 24년, 그래도 힘들었을 아내 손 모처럼 꼭 잡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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