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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불체자 민씨 부부의 새해 선물

이 수 정/사회부 기자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지난 2일 새벽 3시. 불법체류자들에게 운전면허증(AB60)을 발급하기 시작한 밸리지역 그라나다힐스 가주차량국(DMV) 앞에는 신청서류를 든 불법 체류자들로 이미 긴 행렬이 이어져 있었다. 두꺼운 점퍼와 담요를 칭칭 돌려 감고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는 신청자의 얼굴에는 설렘과 초조함이 교차됐다.

가주 정부는 1993년부터 운전면허증 신청자에게 합법 체류신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20년이 넘게 자동차가 발인 미국에서 불체자들은 발이 묶이게 됐다. 자동차 대신 이동시간이 2배 이상 걸리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고, 부득이 운전을 하게 될 때 경찰차라도 보면 숨을 죽이며 운전대를 움켜쥐어야 했던 그들에게 2015년은 새로운 삶을 선사했다. 불법체류자 운전면허증법이 시행된 것.

긴 신청자 행렬 속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민인철(가명)씨도 10년 가까이 거리의 무법자였다. 2002년 아이들 교육을 위해 대기업을 그만 두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취업비자와 영주권 스폰서였던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어떻게든 신분을 살려보려고 만난 변호사만 30명이 넘었다. 인도계 변호사의 도움으로 이민국에 제기한 소송을 2년 만에 이겼지만 신분은 여전히 불체자였다. 그동안 변호사 수수료만 포르셰 한대 값 정도란다.

미국에서 산 12년 동안 세금보고를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는 민씨 부부에게는 12살, 16살 된 두 자녀가 있다. 첫째는 지난해 불법체류 청소년 추방유예(DACA)를 통해 합법신분이 됐고 막내는 다행히 미국에서 태어나서 시민권이 있다.



민씨의 부인 민희수(가명)씨는 "신분만 없지 주민으로서 해야 할 모든 도리를 다했다. 그럼에도 불체자란 이유만으로 직장이나 일상 생활에서 불합리한 일들을 수도 없이 겪었다"며 고통의 심정을 전했다.

민씨 가족의 이야기는 불체자 중 극히 일부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동정심을 가지고 AB60을 찬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사연 없는 가족이 어디 있으며 이해할 수 없는 사정이 어디 있을까.

불체자운전면허증 발급이 정말 필요한 이유는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모두의 안전 때문이다. 무보험자에 의한 뺑소니 교통사고나 차량파손, 인명.재산 피해 등을 줄일 수 있다. 또, 불체자들이 운전면허증을 소지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이라는 책임의식을 갖게 돼 더불어 사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지난 한주간 운전면허증 신청을 위해 가주 차량국을 방문한 신청자는 9만6000명, 이중 불체자 1만100명이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았다. 차량국의 예상 신청자수는 앞으로 3년간 약 140만 명. 시행 첫날인 2일부터 지난 9일까지 총 1만1070명의 불체자들이 가주 운전 면허증을 받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불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무면허로 운전대를 잡고 있다. 여전히 차량국 인력은 부족하고 불체자 운전면허증 발급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다. 하나만 생각하자.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좀 더 안전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것이 AB60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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