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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신은미 기사' 이후의 욕설 전화

오세진/사회부 기자

"여보세요. 오세진입니다." "야 이 XX야. 그런 기사를 왜 써?XXX 같은 놈."

입에 담기도, 글로 옮기기도 역겨운 욕설이 수화기를 통해 고막을 찔렀다. 단 5초 만에, 퍼붓는 욕설을 듣기만 하고 통화는 끝났다. 나이 예순은 훌쩍 넘긴 것 같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전화는 한국에서 강제출국 조치를 당한 신은미(54)씨가 LA로 돌아왔다는 기사가 나간 지난 12일 걸려왔다.

두 시간쯤 뒤에는 한 중년 여성이 전화를 걸었다.

"기사에 나온 OOO씨 전화 번호 좀 알려줘. 그놈 XXX를 부숴버리게." "진정하시고요. 취재원 정보는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역시 너도 한 패거리지? "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또 무차별적인 언어 폭력을 당했다. 전화를 건 여성은 기사 속에 등장한 OOO씨의 의견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연락처를 달라 협박했다.

취재를 했던 10일, 신씨의 LA 도착 당시 공항 입국장에는 LA 한인 보수단체와 진보 성향의 단체가 나와 충돌했다. 서로 욕설을 내뱉었고, 일부는 몸싸움을 벌여 양쪽 각 1명씩 폭행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기사는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고, 입장 차이를 보였던 사람들의 의견도 고루 담았다.

기사가 나간 지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다섯 차례 비슷한 전화가 더 왔다. 신씨를 옹호하는 쪽, 비판하는 쪽이 골고루 섞였다.

하지만 모두가 논리 없는 거친 표현만 쏟아냈다. 이들의 말을 애써 정리해 보자면 '기사가 줏대 없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왜 신씨가 밝힌 입장을 길게 썼느냐', '왜 신씨의 기사 사진을 그런걸 썼느냐', '신씨 지지자들의 말이 왜 더 길게 쓰였나' 등이다.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겁하게 숨은 채 논리 없는 거친 표현만 내뱉는 미성숙한 태도에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당당히 나서야 한다.

신씨의 입국 현장에서 '한인들의 추태'를 불러일으킨 양쪽 진영의 당사자들은 오히려 더욱 공개적으로 나서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도 있다. 당시 공항에 있던 전 세계 여행객들은 신씨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인 한인들의 모습에 크게 당황했기 때문이다. 한 주류 언론 기자는 "입국장에서 한인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얘길 듣고 출국장에서 뛰어내려왔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전화를 건 이들은 "현장에 있어서 잘 아는데…"라면서도 숨어서 엉뚱한 욕설만 퍼붓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했다. 공론장이 민주주의의 핵심적 거점이란 얘기다. 공론장에 설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대표적인 공론장인 언론의 독자기고란을 통해 의견을 펼칠 수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이름을 밝히고 토론할 수도 있다. 기사의 방향을 제안하고 싶다면 일방적인 욕설이 아닌, 의견을 기자에게 전화나 이메일, 우편으로 전달하면 된다.

무책임한 욕설은 이념의 탈을 쓴 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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