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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한글의 추억과 2세 한국어 교육

모니카 류/방사선과 암전문의

어린 시절 겨울밤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서울의 겨울 햇볕 또한 너그럽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겨울 체육종목으로 스케이트가 필수였다. 실내 스케이트장이 없던 가난했던 때라 스케이트 시험을 무사히 치르려면 한강변에 만든 노천 스케이트장에서 연습했어야 했다.

교복 이외에는 목도리나 코트를 덧 입어서는 안 되는 교칙이 있어 방과 후에 스케이트 연습을 갈 때도 교복을 입었다. 스케이트 연습으로 꽁꽁 얼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면 작지만 따스한 온돌방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보낸 어린 시절 겨울밤의 추억 속에는 연필과 아버지 동치미 국수 밤참과 엄마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때의 추억에는 엉망으로 써대는 나의 글씨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시던 아버지 밤참으로 동치미 국수를 말아주고 내 옆에서 소설을 읽으시던 엄마가 있다.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무언의 가르침은 한문을 중요시 했던 아버지보다 한글'을 더 좋아하고 쓰시던 엄마에게서 온 것임을 나는 안다.

아버지는 교사였다고 한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교사 시절의 아버지를 모른다.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일찍 학교를 떠났다 하는데 아버지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가 보기에도 정직하고 곧았지만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속 좁은 좁쌀영감'이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사교적이지 못했다. 자동 연필깎이가 없던 시절 아버지는 당신이 아끼는 잭나이프로 내 연필을 깎아주곤 하셨다.



아버지가 깎아 주시던 뾰족한 연필로 써가던 한글 아버지가 젊은시절 걸었던 교육자의 길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엄마지만 늘 즐겨 읽던 엄마의 소설책들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나의 일부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리고 나에게는 한글이 있어 삶이 풍요롭다. 나는 일기를 한글로 쓴다. 서류교환의 30% 정도는 한글이다. 또 매일 나는 한국신문을 읽는다. 한글이 가진 창조성 과학성 조직성 변속능력 신속성 등에 놀라고 감사한다.

아버지의 꼼꼼함에 숨막힌다고 피해 왔던 '교사'라는 천직을 이 겨울 다시 생각하게 된 기회가 있었다. 지난 달 한글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한국 밖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반석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한국어 진흥재단'이 연례 한국어 교사 겨울연수를 주최했다.

이 연수는 LA한국교육원이 후원했다. 이번 연수에서는 '왜 한글을 배워야 하는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높일까' 'SAT2를 넘어 한국어 AP까지 만들자' 등 여러 주제의 워크숍도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교사들의 경험담과 그들의 꿈이 흥미롭고 순수했다.

이 재단은 20년 전 한국어 시험을 SAT2에 포함시키기 위해 발족했는데 한인과 단체 한국정부 한국기업(삼성) 등이 물질적으로 도왔다. 한국어는 SAT2에 채택된 9번째 외국어다. 한인 2세뿐 아니라 타민족 어린이들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한국의 국제화에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겨울 아버지의 글씨 쓰기 지도 한글을 사랑했던 엄마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들 그리고 한글이 있게 한 세종대왕을 다시 생각하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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