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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캘리포니아의 봄

이 종 호/논설위원

한국 교육방송(EBS)의 세계테마기행을 즐겨 본다. 최근엔 러시아 극동지역의 생태와 풍물을 다룬 '캄차카편'을 인상 깊게 봤다.

환태평양 화산대의 핵심 지역으로 지금도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이글거리는 곳이다. 1년의 거의 절반은 북극의 칼바람이 몰아친다. 얼마나 척박한지 도저히 생명이라고는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 짧은 해빙기를 이용해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핀다. 강이 흐르고 물고기와 동물들이 짝을 짓고 번식을 한다. 그 속에 깃들어 사람도 살아간다. 물론 힘들다. 치열하다. 그렇지만 평화롭다. 행복하다. 단순한 삶일수록 행복지수는 높아진다는 말 그대로다.

다큐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 생각이 미쳤다. 가장 많은 미국인들이 살고 있는 '기회의 땅'이다. 2014년 현재 인구 3880만명, 2위인 텍사스보다 거의 1100만 명이나 많다. 해외 한인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면적으로는 한반도 전체의 두 배가 넘는다. 미 본토 최고로 높은 산이 있고 가장 많은 국립공원이 있다. 모하비와 데스밸리 같은 사막도 있다. 그래도 캘리포니아 하면 역시 강렬한 태양과 푸른 바다다. 세계에서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지역이라는 지중해성 기후 지역, 바로 LA를 포함한 중남부 태평양 연안이다.



이런 기후는 유럽 남쪽 지중해 연안과 남아프리카 끝자락, 칠레 중부, 호주 남서부 등 지구상에서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는 곳, 비가 적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래도 사계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곳,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그런데 이 땅의 사람들은 그런 날씨의 고마움을 얼마나 알까.

한국에 살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는 한국 기후가 세계 제일인 줄 알았다. 뚜렷한 사계절, 맑은 가을 하늘, 삼천리 금수강산, 무르익은 오곡백과. 얼마나 많이 듣던 말이었던가. 하지만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모질기로 치면 한국 날씨도 캄차카만 결코 못하지 않았다. 겨울, 춥고 건조한 시베리아 삭풍은 뼛속까지 시리게 만들었다. 여름, 툭하면 태풍이고 홍수다. 후텁지근한 무더위에 모기 벌레 땀띠는 또 얼마나 귀찮고 괴로웠던가. 그나마 봄 가을은 나았다. 하지만 너무 짧았다. 그마저도 요즘은 황사에 조류독감에 구제역까지 웬 역병은 그리도 자주 발생하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캘리포니아 사람들, 감사가 저절로 나와야 한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은 자꾸 그 고마움을 잊게 만든다. 날마다 쏟아지는 우울한 소식들도 이 좋은 날씨를 무심히 흘려버리게 만든다. 답답하고 울화 치미는 본국 소식이야 으레 그러려니 치자. 끊이지 않는 테러와 인질 참수, 노부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한인사회 소식들이 여전히 우리를 침울하게 만든다. '날씨만 좋으면 뭣하나, 살기가 편해야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새벽은 온다.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가 있다. 지금 이대로 끝나라는 법은 없다. 그게 세상 이치다.

그나마 우리 곁에 이런 좋은 날씨라도 있다는 것, 그게 LA 사는 기쁨 아닌가. 축복 아닌가. 일부러라도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고개 들어 하늘도 보고 움 틔우는 나무도 한 번 쓰다듬어 보자. 그렇게 얼어붙은 내 마음부터 녹인 다음이라야 감사도 나오고 자연사랑, 이웃사랑도 생겨나는 법이다.

다시 2월이다. 햇살과 바람부터 감촉이 다르다. 가로수는 벌써 화사한 꽃향기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우리집 베란다에도 작년에 옮겨 심은 철쭉 분재가 붉은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캘리포니아에 봄이 왔다. 봄 향기를 맡을 줄 아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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