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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기본기] 말랑한 표현의 경박함

한병수 박사/ 칼빈신학교

시인은 "여호와의 친밀함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시25:14)고 말합니다.

여기서 친밀함은 서로 비밀을 지켜 주어야 하는 둘 사이의 은밀한 소통을 뜻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대부분 주님과의 이러한 소통을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굿모닝 성령님"과 같은 말랑한 표현으로 주님과의 친밀감을 과시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언어와 태도는 눈으로 보기에도 민망하고 경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주님과의 친밀한 도모를 반대하고 타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친밀함에 도달하는 접근법에 대해서는 면밀한 숙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주님과의 친밀함, 이렇게 고상한 명분을 빌미로 자신의 천박한 종교성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뿌듯한 표정으로 마구 발산하는 행보의 창궐이 요즈음 기독교 내에서는 물론이고 비기독교 안에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여호와의 친밀함은 그를 경외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취한 하나님을 향한 태도들이 잘 입증합니다.

모세의 경우 주님께서 "내 목전에 은총도 입었고 너의 이름도 안다"고 하실 정도로 친밀함의 정도가 기준치를 훨씬 상회했던 분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심히 두렵고 떨었다"는 심정을 밝힙니다. 다윗도 시편의 전반적인 논조를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라"는 말로 채색했을 정도입니다. 나아가 성경 자체도 여호와 경외를 인간의 창조적 본성으로 묘사하며 지혜와 거룩과 생명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여호와를 경외함과 친밀함의 절묘한 균형을 요구합니다. 그 균형은 경외함이 우선이고 친밀함은 그 열매라는 다소 인과적인 관계성에 의해 확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의 도리이고 친밀함은 그런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이라 할 자비로운 친밀함을 우리가 통제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하려는 생각과 태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심각한 수준의 교만일지 모릅니다. 경외함과 친밀함은 역순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경외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인데, 그것을 빌미로 존귀하신 하나님께 종교적 무례를 범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친밀'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나도 당당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치를 보는 본말전도 현상이 우리의 삶이 아닌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로 하여금 경외하게 함이라는 말라기의 기록이 우리의 모양까지 취하시며 가까이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전에 가져야 할 우리의 마땅한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듯합니다.

aposo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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