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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인문학 전공자가 사는 법

이종호/논설위원

나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소위 말하는 인문학이다. 30년 전, 그때도 인문학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진로가 한정되어 있고 취업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배짱이었다.

그래도 시대를 잘 만난(?) 덕에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이, 졸업장 하나 달랑 들고도 대기업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3년 뒤엔 신문사로 옮겼다. 기자가 된 뒤 비로소 전공 선택이 나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역사 공부 방법론은 세상을 읽어내고 분석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문제를 짚어 내고 대안을 찾기 위해 쟁론했던 경험도 큰 자산이었다. 지금까지 대학서 쓸모없는 공부를 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유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가 인문학을 전공하겠다고 물어 오면 쉽게 그렇게 하라고 나설 자신이 없다. 작금의 '인문계 취업 대란' 세태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한다.

사실 요즘처럼 인문학을 많이 이야기하는 때는 없었다. 인문학 속에 길이 있다며 모두가 인문학을 들먹인다. 쏟아져 나오는 책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며, 모모 재벌 회장님이 그랬다며 너도 나도 인문학 공부에 열을 올린다.



그런데도 정작 인문학 전공 젊은이들은 울상이다. 취업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 명문이라는 SKY대학(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조차도 순수 인문계 전공자는 절반도 취업을 못한다고 한다. '인문계 출신 구십 프로가 논다'는 '인구론'이라는 신조어는 그런 현실의 처절한 반영이다.

그래도 우리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대졸자가 너무 많아진 탓도 있고 경제가 안 좋아서이기도 하다지만 지금 상황은 분명 도를 넘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인문학의 본질을 한 번 더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문학, 역사, 철학 등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학문이다.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미학, 여성학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가를 궁구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대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과 머리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소수의 리더들, 혹은 삶을 고뇌하는 일부 선각자들만 매달렸다. 동시에 먹고 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교양으로 하는 '귀족 학문'이었다. 그런 용도는 물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요즘 같은 인문학 대중화는 모순이다. 인문학 전공자의 취업난 또한 예고된 결과다.

이런 인문학의 속성을 외면한 채 무책임하게 학과를 만들고 정원만 늘려온 대학은 그래서 가장 먼저 반성해야 한다. 또 인문학이 비실용 학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전공으로 선택한 본인들도 일말의 책임을 져야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다. 세태에 영합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은 당장 연구하고 생산하고 판매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인재를 고를 수밖에 없다. 관련 기술이나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이 널렸는데 어떤 기업이 인문학 전공자를 먼저 뽑겠는가.

취업을 위해서라면 요즘 각광받는 '스템(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전공'이나 의약 분야에 도전하면 된다. 그럴 능력이 없거나 그 쪽은 도저히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굳이 인문학을 전공해야겠다면 대신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거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배고플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그것이 인문학도에게 지워진 사명이고 숙명이다.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아무리 세상이 물질 만능으로 바뀐다 해도 누군가는 여전히 실존을 고민하며 인간의 길을 찾아야 하고,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인문학도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이다. 이래저래 인문학 전공자는 머리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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