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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예술혼의 광장에서

몇 년 전 친구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LA타임스 기사가 담긴 e메일이었는데 KBS교향악단에 관한 보도였다. 내용을 보았더니 당시 신임 음악감독과 단원들과의 마찰에 대한 보도였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만큼 이 사태는 당시 한국 음악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기연주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양측의 갑론을박 논쟁이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되었다. 결국 오케스트라는 KBS라는 둥지를 떠나 법인화의 운명을 맞이했고, 새로운 음악감독이 선임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단원들의 이미지는 추락했고 이에 실망한 관객은 연주장을 떠났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음악가들 역시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일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크다. 그렇기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나 천재 음악가들과 일할 때는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별한 사람과의 교감이 예술적 자양분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그렇다. 쿠르트 마주어와의 만남이나 랑랑과의 리허설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가까이서 한 번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영감(靈感)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경할만한 인물로부터 생기는 신뢰도 있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실연(實演)을 들어보지 못하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예술혼을 불태우게 만드는 사람을 만날 때 음악가들은 가슴이 뛴다. 올해로 95세를 맞는 줄리아드 현악사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로버트 만(Robert Mann)이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가들은 자기 자신이 제대로 평가 받는다고 생각될 때도 신뢰가 형성된다. 그렇다고 몸 값이 단순히 돈과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연주료를 적게 받거나 아예 한푼도 받지 못하더라도 저명한 연주자나 단체로부터 연주 의뢰가 들어오면 자신의 가치가 매겨지게 된다. 중요한 자리를 빛낼 수 있도록 초대되는 것 역시 자신의 몸값을 증명한다. 바로 신뢰가 형성되는 현장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수준에 못미친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단체와 함께 연주하게 되더라도 파격적인 대우가 보장될 때 신뢰가 생겨날 수 있다. 명예도 영감도 아니라면 실질적인 이득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적인 이치이기 때문이다. 음악가들에게 있어서 이런 조건들이 얼마나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어가는가가 중요하다. 유명세만 쫓아가다는 실속 없이 헛바람만 들 수도 있고, 돈에만 목숨 건 속물 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부분을 챙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KBS교향악단의 내홍이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지난 12월에는 안타깝게도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일어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항명 파동인가 싶더니 전 대표의 부도덕적성과 비인격적인 대우가 도마 위에 올랐고, 이어 불똥이 정 감독과 임명권자에게 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번져나갔다.

‘누가 잘못했는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그게 정말 잘못인가?’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위해 따져야 할 변수들과 여러 유기적인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모인 공동체를 이론과 원칙에 따라 운영하는 것과 실제로 경영하는 것은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극이 존재한다.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곳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순진무구한 불평부터 시작해서, 구체적인 자료와 숫자까지 제시하는 주장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며 맹렬하게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은 자기 중심으로부터 출발하고 그에 따라 성급하게 결론을 짓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비판을 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차분하고 냉철해야 한다.

소설가 정이현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는 비밀스러워도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막상 그 사람을 부모님께 인사시키는 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사안이 아니라고. 예술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지만, 이것이 구현되는 현장에 서게 되면서 다른 차원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 예술혼이 광장에 세워졌을 때 대중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한 사회적인 합의가 마련되어야 하고, 또 마땅히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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