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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92세 노인이 남긴 600만불

[LA중앙일보] 발행 2015/02/11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5/02/10 21:13

김완신/논설실장

지난 해 6월, 92세의 한 남성이 사망했다. 평범했던 그의 죽음은 묻혀가는 듯 했지만 최근 언론에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버몬트주 배틀보로에서 출생한 로널드 리드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제대 후에는 주유소에서 25년, JC페니 백화점에서 17년을 경비원으로 근무했다.

그의 절약하는 생활습관은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고교시절에는 교통비가 없어 학교까지 편도 4마일의 거리를 걸어서 통학했다. 낡은 플란넬 셔츠에 야구모자를 쓴 리드가 주민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다. 주차미터기에 동전을 넣는 것이 아까워 멀리 떨어진 곳에 중고 소형차를 주차하고 걸어오는 것은 일상이었다. 또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길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익숙하게 줍는 모습도 주민들에게 자주 목격됐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리드는 평생을 근검과 절약으로 힘겹게 살다 간 노인이었다.

그런데 지난 8일 그가 600만 달러의 유산을 지역 병원과 도서관에 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480만 달러를 배틀보로 병원에 쾌척했고 120만 달러는 브룩스 메모리얼 도서관에 기부했다. 그가 아꼈던 에디슨 축음기와 수십개의 레코딩 드럼은 지역 역사학회에 기증했다. 이들 기부외에도 여러 곳에 자신의 재산을 남기고 떠났다.

리드는 평생 허영을 모르고 살았지만 유일한 사치이자 '투자'가 있었다. 그 덕분인지 리드는 주식투자에서 숨은 실력을 발휘해 대박을 쳤고 이를 통해 모은 재산을 죽음과 함께 사회에 기부했다.

기부문화는 종종 부유층의 전유물로 생각되기도 한다. 몇해 전에는 미국의 억만장자 40명이 생전 또는 사후에 재산의 반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등이 주축이 됐다. 오는 9월 20일 LA다운타운에 개관하는 '브로드 뮤지엄' 건립에 거액을 기부한 부동산 재벌 일라이 브로드는 "재물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이를 사회.국가.세계에 돌려주어야 한다"며 "이는 부자의 '책임'이 아니라 '특권'"이라고 강조한다.

로널드 리드의 기부는 미국 상류층의 기부와는 다르다. 일생을 아끼고 절약하며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의 극기(克己)의 결과다. 6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남겼지만 그 돈은 가난한 손으로 건네졌다.

미국사회의 기부를 단순 금액이 아닌 소득대비 기부액수로 보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비율이 높다. 지난 2011년 기준 미국내 상위 20%의 소득대비 기부율은 1.3%였으나 하위 20%는 소득의 3.2%를 기부했다. 또한 비영리단체 소식 전문매체 'The Chronicle of Philantropy'에 따르면 소득이 20만 달러 이상의 계층은 2006년과 비교해 2012년에는 5% 적게 기부한 반면 같은 기간 소득 10만 달러 이하의 계층은 오히려 기부액수가 5% 늘었다. 20만 달러 이상 계층은 장기불황이 계속된 2012년에 기부를 줄였지만 소득이 이보다 못한 계층들은 기부를 더 많이 했던 것이다. 또한 워싱턴DC 집코드별 기부현황에서도 절대액수는 부유층 지역이 많았지만 소득대비 기부율은 저소득층 지역에서 더 높았다.

이 같은 저소득층의 기부활동에 대해 심리학자 폴 피프 박사는 "부자들은 대중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저소득층은 일종의 동병상련이 있어, 가진 범위에서 적지만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부문화는 이제 미국사회의 전통이 됐다. 소유의 정도에 관계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로널드 리드처럼 자신을 희생한 대가로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 부호들의 거액 기부에 가려져 있지만 저소득층의 소소한 기부들이 모여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다. 미국의 저력은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선을 실천하는 다수(多數)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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