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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피해자 가족의 외면당한 슬픔

정구현/경제부 차장

그에게 종신형이 내려진다. 2008년 6월23일 LA북부 랭캐스터 쿼츠힐에서 발생한 한인 일가족 살해방화사건의 주범인 심재환(45)이다. 이 사건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았다. 사건 피해자로 추정됐지만 실종상태였던 윤시영(당시 34세)씨의 시신이 6년 6개월 만에 발견본지 2015년 2월3일 A-1면>되면서다.

심재환은 고향 친구 권태원(44)과 공모해 전처 박영화(당시 34세)씨와 박씨의 두 자녀, 형부 조셉 시가넥(60)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아내 박씨가 결별을 요구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자 앙심을 품고 저지른 계획된 범죄였다.

시신이 발견된 윤씨는 숨진 박씨의 남자친구였다. 경찰은 심이 질투에 눈에 멀어 아내와 사귀던 윤씨까지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경찰은 윤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 사건이 7년 가까이 미제로 남았던 이유다.

이 사건은 기자 개인적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종종 경찰에 전화를 걸어 '시신을 찾았느냐'고 귀찮게 했다. 특히 숨진 윤씨의 아버지 윤철규(71) 목사가 "아들의 시신만이라도 찾게해 달라"는 호소는 잊기 어려웠다. 윤씨의 시신은 굳게 닫혔던 심의 자백으로 찾을 수 있었다. 사건 현장에서 600마일 떨어진 멕시코 국경 인근마을에 윤씨의 시신은 묻혀있었다. 심이 도주했던 곳이다.



수사관이 '굿뉴스'라며 알려준 윤씨 시신 발견 소식에 의문이 앞섰다. '왜 이제와서 자백했나'는 의구심이다. 심의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가 심의 마음을 움직여 시신 위치를 자백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과연 그뿐일까. 속사정을 알고 보면 심의 자백은 범인과 검찰 양쪽의 필요에 의한 '거래'로 이뤄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심은 윤씨 시신의 위치를 자백하는 대신, 검찰과 양형협상을 통해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받게됐다. 검찰과 경찰로서도 심의 자백은 반갑다. 우선 윤씨 소재 파악에 시간과 인력 낭비를 종결시킬 수 있게됐다.

수사를 맡은 LA셰리프국 살인과는 사건 발생후 7년 가까이 윤씨 시신의 행방을 추적해왔다. 헬기로 랭캐스터 인근 사막 상공을 날았고, 잠수부들이 호수 밑바닥까지 뒤집었다. 가끔 무연고 시신이 발견될 때 마다 수사관들이 현장에 호출됐다. 한 수사관은 "내 책상 뒤에 쌓인 수사관련 서류들이 박스로 6개 분량"이라고 전했다. 또 검찰 입장에서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부담을 벗을 수 있다. 검찰은 심을 5건의 살해혐의로 기소했다. 이중 1건은 윤씨 살해 혐의다.

시신은 혐의를 입증할 최대 증거이자 살인을 성립할 요소다. 무엇보다 아들을 찾아달라는 윤씨 아버지의 눈물어린 호소를 검찰은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심은 오히려 검찰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였다. 다소 찜찜했지만, 취재를 마친 뒤 미제 사건이 해결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피해자 가족은 시신을 찾았고, 검찰은 재판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외면당한 슬픔이 있었다. 숨진 박씨의 사촌 언니이자 숨진 시가넥씨의 아내인 조슬린씨다. 그녀의 전화음성은 분노와 슬픔이 뒤엉켜 있었다. "사람 다섯을 죽인 범인에게 종신형이라니요…." 양형 협상 과정에서 그녀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을 잃은 그녀 입장에선 당연히 심에게 사형이 언도되길 바랐을 터다. 하지만 그녀의 울음속에는 허탈함의 비율이 더 컸다. 그녀는 심을 용서할 권리마저 빼앗긴 셈이다.

그녀는 물었다. "변호사를 사면 양형협상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없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다. 그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던 심의 선고재판은 그녀에겐 더이상 의미가 없다. 심은 감방에서 평생을 보내게 됐다. 그렇지만 그녀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라는 마음의 공간속에서 남은 삶을 보내야 한다. 그의 종신형은 그녀에게도 종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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