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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설날 떡국 한 그릇에 '울컥'

구혜영/사회부 기자

나 혼자 산다. 이렇게 말하는 게 오늘처럼 청승맞은(?) 날도 없을 거다. 부모님 뒤꽁무니 졸졸 쫓아다니는 스타일도 아니고, 외로움 따윈 오래전에 버린 내가 설날 떡국 한 그릇에 울컥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설날, 까짓 거 별거야? 떡도 싫어하는데 뭐 됐어'라고 생각했지만 괜히 짜증이 난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4시간이 넘었는데 아직도 답장이 없다. 그들은 읽지도 않았다. 딸내미 없는 연휴를 만끽하는지, 여행을 떠났는지 감감무소식이다. 가족이 뭔지….

가족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단순히 집에 가고 싶다거나 어리광을 피우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다(그럴 나이도 아니다). 피붙이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게 고민의 포인트다.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어서'라고 말하기엔 억지가 있다. 말을 잘 하지 않게 된다. 당연히 알 거라고 믿는 구석도 있고, 걱정시키기 싫어 어물쩍어물쩍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가족 사이에 부끄럽게 칭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말해도 가족이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최근 본 영화 '국제시장'은 가족에 대한 이런 감정을 잘 보여준다.



한국전쟁.파독광부.베트남전쟁 등 역사의 굵직한 페이지를 몸소 겪은 주인공의 머릿속엔 가족밖에 없었다. 가족을 위해 살아남았고, 가족들 먹여살리려고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다. '화 잘 내는'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이 명절날 모인 가족들을 거실에 두고 혼자 골방에 들어가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외투를 껴안고 "너무 힘들었거든예. 저, 그래도 잘 살았지예?" 하며 펑펑 운다.

영화 중간에는 아내에게 "애들이 (전쟁 등) 어려운 일 안 겪고 우리가 대신한 게 너무 다행스러워"라며 속 마음을 내비친다. '가족이니까'라는 게 이유다. 하지만 자식들은 어렴풋이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할 뿐 따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아버지를 잘 모른다.

설날 기사를 위해 LA 40대 가장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한국에 계신 장모나 친지들에 새해인사를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어디 편찮으신 곳은 없으세요?"라고 한마디 하면 어색함이 몰려온다고 했다. 그중엔 영어가 편한 자녀와 대화의 벽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이 살아도, 멀리 살아도 '불편한 간격'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간격을 부수는 건 어쨌든 대화밖에 없다는 걸 다 안다. 그런 노력을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모두 잘 안다. 가족이니까.

어제는 설날, 한국은 아직 설 연휴다. 난 오늘 다시 수화기를 들까 한다. 부모님이 전화를 받든, 못 받든 전화를 하겠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 잘생긴 영화배우, 피부에 좋다는 화장품, 먹고 싶은 음식 얘기라도 꺼내겠다. 친구하고 전화하느라 배터리 나가는 게 일상인 사람이 가족과 할 말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될 말들이 많지 않은가.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아줄 거다(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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