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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미국 전문의 시험의 악몽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나에게는 악몽같은 시험 기억이 하나 있다. 미국 정신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치렀던 구두시험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아닌 외국에서 의과대학을 수료하고 이곳에서 수련을 마친 의사들을 IMG(International Medical Graduate)라 부른다. 이들에게 필기시험은 걱정이 없다. 레지던트 훈련을 규정대로 마치고 그간의 지식을 총정리했다면 말이다. 필기 시험에 합격한 의사는 구두 시험에 합격해야만 전문의 자격증을 받는다.

정신과에서는 두 가지 관문을 동시에 통과해야만 됐었다. 첫번째는 실제 환자를 30분간 인터뷰한 후 진단된 병명 이와 감별해야 할 다른 병들 환자에게 해주어야 할 최선의 치료방법 이후에 나타날 병의 예후 진단에 필요했던 환자의 심리적 신체적 그리고 환경적인 요건들 성장에 관련된 과거력과 가족력 등을 밝혀내야 한다. 시험 스트레스로 떨고 있는 의사와 그보다 더 불안해 할 환자가 마주보고 있는 작은 사무실에는 두 명의 시험관(이미 전문의가 된 정신과 의사들)이 앉아 있고 또 다른 한 명이 수시로 방을 드나들며 독자적인 채점을 한다.

두번 째 관문은 실제 환자 대신에 비디오에 찍힌 환자의 정신감정 내용을 시청한 후에 진단명 치료법 예후 등을 세 명의 시험감독관 앞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를 한꺼번에 합격해야만 한다.

내가 처음 본 구두 시험의 실제 환자는 젊은 백인 여성이었다. 뉴욕과 뉴올리언스에서 수련을 받는 동안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콜로라로주의 덴버시가 시험 장소였다. 지정된 방의 문을 여니 근엄한 두 명의 남자 시험관들 앞에 공포에 가득한 얼굴의 여자 환자가 발을 떨며 앉아 있었다.



미국에 온 후 5~6년간 열심히 환자를 보았지만 당시 한국어로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하던 나였다. 지금처럼 40여년간의 경험을 쌓은 후였다면 우선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환자쪽을 보면서 나의 소개를 먼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황한 나는 보통 건강한 환자를 대하듯이 일상적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이름이 무엇이지요?"라고.

어느 의사라도 환자에게 묻는 질문이었지만 콜로라도주 어느 깊은 시골에 위치한 주립 정신과 병원에 오랫 동안 입원해 있다가 불려나왔을 이 환자는 아마 동양인 얼굴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게다가 알아듣기 힘든 액센트로 물어보니 환자는 당황하고 혼비백산 한 듯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도망치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의 사고의 능력도 마비된 듯했다. 이후 상황은 뒤죽박죽이 되버렸고 나는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 채로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난 무도장이 내려다 보이는 8층 난관은 애써 피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뛰어내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결국 세 번의 도전만에 두개의 관문을 통과하여 전문의가 된 것이 1980년도 미국 온 지 7년만이었다. 당시 AMG(American Med School Graduate)의 합격률이 80%인데 비해 IMG는 20~30%에 그쳤던 것이나 또 다른 이유 때문에 구두시험 제도는 결국 없어졌다.

조금만 기다렸었더라면 그 고생을 피할 수도 있었을텐데. 씁쓸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때 나 때문에 놀라 고생을 했을 여자 환자에게 새삼스레 사과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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