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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인사도 할 줄 모르는 무례한 기자?

오세진/사회부 기자

경찰서 취재는 늘 떨린다. 취재가 어려워서다. 경찰들만 가진 비공식 사건 정보를 얼마나 캐내느냐가 취재의 성공 여부를 가른다.

처음에는 자신 있었다. 한국에서 악명 높은 사회부 '사스마와리(경찰서 붙박이 기자)'를 잠시 겪으며 나름대로 터득한 기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 형사들 옆에 붙어 "형님, 형님" 하며 귤을 까 입에 넣어주곤 했다.

눈 한 번 마주치지도 않고 대답도 안 하던 '형님'들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긋한 귤 냄새에 입을 열곤 했다. 가끔 특종거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덕분에 서울대 인근 경찰서 7곳, 일명 '관악 라인'에서 '(중)앙귤이'로 통했다. '중앙일보의 귤 까는 기자'란 뜻이었다.

하지만 미국 경찰은 먹을 것 따위에 현혹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귤 대신 커피와 초콜릿 도넛을 들이밀었다. 몇몇 경관은 도넛을 받아먹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려움을 겪던 중 우연히 한 주류 언론의 베테랑 기자를 현장에서 만나면서 경찰 취재의 열쇠를 쥐게 됐다.



자신을 '바비'라고 부르라던 나이 지긋한 기자는 필자의 취재 모습을 보더니 날카롭게 한 마디 했다. "세진. 인사를 하잖아 왜 대답을 안 해? 경관도 사람이야. 웃으며 인사 한 마디 하고 시작하면 좋잖아."

말문이 막혔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고 멋쩍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궁금함을 풀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 기본을 잊었던 모양이다.

상황은 이랬다. LA경찰국(LAPD) 소속의 두 경관이 사우스 LA에서 흑인 청소년에 총을 쐈고, 청년이 사망했다.

미주리주 퍼거슨시에 이어 LA에서도 거센 시위가 일었다. 취재는 경찰 측에 공식 입장을 묻는 내용이었다. 당시 앤드류 스미스 공보실 커맨더는 질의 응답 전 "어떻게 지내느냐(How are you?)"고 물었다. 기자의 대답은 이랬다. "그래서 내부 조사를 할 건가?"

바비는 매우 무례한 대답이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경찰은 그저 뻔한 대답만 하고 돌아서면 그만인데 무례한 기자에게 굳이 구체적인 설명을 하겠느냐는 조언이 이어졌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청년 기자로서 예의 하나는 자신 있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바비의 말 한 마디에 자존심을 구겼다.

인사성 때문에 말들이 많다. 최근 만난 친구는 아무리 인사를 해도 대꾸가 없는 거래처 직원에게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다며 '을의 설움'을 토로했다.

어떤 업체에서는 직원끼리 인사 문제로 사소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은 아랫사람의 인사성을 술자리 안주로 삼기도 한다.

인사에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란 의미도 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꼭해야 하는, 인격 존중의 표시가 인사다. 바비의 조언 덕에 의외로 취재가 잘 된 경우가 많았다.

오늘은 발목을 다쳤다 돌아온 한인 경관을 만나러 간다. 알아내야 할 게 많지만 발목 얘기 먼저 물어야겠다.

메모해 둔 얼음 찜질 요령도 건넬 거다. 먹을 건 잠깐의 음식 냄새를 내뿜지만, 이 메모는 오래도록 사람의 향기를 남길 것이라 기대한다. 다름 아닌 인사(人事)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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