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감사
김학천/치과의사
한데 이번에 미국 '의학계의 문인'이라 불리는 신경학 전문의 올리버 색스 박사가 뉴욕타임스에 올린 기고문이 다시 우리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9년 전 안구 흑색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은 후 결국 한쪽 시력을 잃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의 끝자락에서 "이제 죽음과 마주하고 있지만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고 반대로 나는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우주의 법칙엔 절대로 반칙이 허용되지 않는 신비의 약속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루의 일을 성실히 마치고 서서히 바다 건너로 사라지는 해처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평함이다. 나이에 관계 없이 돌발적으로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질환을 통해 조용히 혹은 거칠게 다가오기도 하는 심판이다. 앞서 간 이들의 뒤를 이어 내가 섰듯이 내 자리 또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마땅한 섭리라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님에도 회한과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간은 질병의 위협에 의연하기에는 너무도 연약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엔진' 저자 루이스 월퍼트 교수도 78세가 되던 해 "즐겁게 연구하고 보람있게 살아 왔지만 나 역시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허무하진 않아도 우울하긴 하다"고 했지 않은가. 색스 박사 역시 80 넘게 사는 행운 속에서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지금 이 순간보다 삶에서 더 초연해지기는 어렵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인생을 한 발 멀리서 조망해 본 결과 불필요한 무언가를 위한 시간이 더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남은 몇 개월을 최대한 풍요롭고 깊이 있게 살도록 애쓰겠다고 다짐했었다. 해서 이제부터는 자신과 자신의 일 그리고 친구들에게 집중함으로써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을 준비하며, 더 많이 쓰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글 말미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지만, 누군가의 죽음 후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 받았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했다. 특히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지각력 있는 존재였으며, 생각하는 동물로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엄청난 특혜와 모험이었다고 했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도 늘어나고 있다. 이 좋은 세상에서 살다가 다가오는 죽음의 심판 앞에서 얼마큼 사람다운 존귀를 누릴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가야할 때를 정중하게 맞을 준비를 하며 산 이의 뒷모습은 귀하게 보인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원망과 시비로 거역하지 않는 그의 아름다운 모습이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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