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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내 페이스북 물려줄까 말까

분홍색 앉은뱅이 화장대는 우리 네 남매의 안방 놀이터였다. 수줍게 분홍 옻칠한 매무새에 자개 장식을 군데군데 붙이고 길다란 거울 세 개를 얌전히 세워 앉힌 엄마의 화장대. 우리는 제각기 수만 번쯤 서랍을 넣고 빼고 부시럭대며 손잡이에 고무줄을 걸어 가야금 놀이를 하며 그 곁에서 자랐다. 낯선 집으로 이사를 해도 화장대가 놓인 곳은 단박에 우리집 안방이었고 내 유년이 분칠된 고향으로 엄마 자신으로 마음 안에 품어졌다.

십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던 지난 1월 화장대 작은 서랍 안쪽에 우리 남매의 이름이 볼펜으로 큼직하게 적힌 것을 발견했다. 자기 이름을 제일 앞에 적어 넣은 어린 오빠의 낙서였다. 코끝이 찡했다.

"엄마 나중에 이 화장대 나 주세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빙그레 웃으셨다.



"그래 네가 가져라."

나는 결코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필연코 찾아오고야 말 서러운 그 날에 때묻은 분홍색 앉은뱅이 화장대를 '상속' 받게 될 것이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의 아귀가 꼭 맞는 상속의 경험이 될 것을 확신하기에 나는 기쁘다. 물려받아 환전할 것이 아니기에 간직하고 사용하고 기억할 그 유산이 몹시 기껍다.

유산 그리고 상속이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가격표'와 함께 유통되고 있다. 50평짜리 아파트는 유산이고 상속의 대상이지만 부모가 간직해 온 가족 사진첩은 추억이고 기념품이며 물려받을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존재다.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 것들은 유산의 쇼윈도에서 밀려나 추억과 기념물의 상자에 담기고 남은 자들의 관심에 따라 '의미'라는 레이블이 붙어 처리될 뿐이다.

지난달 12일 사망한 사람의 페이스북 계정을 타인에게 물려주는 '계정유산 상속제도'를 발표한 페이스북 뉴스를 대하며 나는 과연 개인의 페이스북 계정이 요즘 시대의 '유산'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사용자가 지정해 놓은 상속자가 고인의 페이스북을 물려받아 '추모계정'으로 관리한다는 취지는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깊이 고려한 정서적인 서비스다. 죽은 딸의 카톡에 매일 문자를 보내는 아버지 남겨진 음성 메시지를 영원히 듣고 싶어 전화번호를 없애지 못하는 어머니의 간절함들이 모두 그런 필요를 증거한다.

그런데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미리 상속자를 지정하거나 계정 삭제를 결정해 두어야 한다는 부분에서 간단치 않은 고민이 생긴다. 누구에게 내 페이스북을 물려줄까? 나를 추억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할 사람이 누구일까. 내가 물려줄 디지털 유산은 과연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을까. 나에게는 소중한 역사지만 과연 타인이 하물며 자식이라 해도 그만한 가치를 공감하고 보관하게 될까.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SNS가 일상을 기록하고 관계를 주고받는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은 세상에서 페이스북은 한 개인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역사책일 수 있다. 다만 자식이나 배우자 친구나 지인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만한 기록인가 앞으로 그렇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나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의 아귀가 꼭 맞는 상속이 사후에 가능할 지 확신할 수 없는 나는 아무래도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며 계정 폐쇄를 지정해 둘 것 같다.

다만 한가지 엄마의 분홍 화장대처럼 혹시 내 페북에서 나의 시간에 함께 묶인 자신의 추억을 발견하게 될 누군가가 있다면 어찌할까. 그것이 미련스러운 숙제로 남는다. 페북 상속자를 공모해야 하려나.

최 주 미

조인스아메리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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