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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불멸의 굽이침

박재욱(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봄의 들목이다. 들에 서 있는 막대기에 물이 흐르고"라고 읊었던 어느 단시처럼, 기진했던 산천초목에 봄물이 오른 지는 꽤 오래다. 3월에 들자 있는 힘을 다한 휘모리로 앞 다투어 피어나는 봄이 지천이다. 그야말로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봄, 그 봄의 제전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빛과 물의 화가, 안영일님의 작품이 전시된 롱비치 뮤지엄의 넓은 창을 통해 바라본 바다, 거기엔 안화백의 또 다른 걸작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해넘이 불콰해진 하늘 아래 미풍의 운율에 실려 보석처럼 빤짝이는 은빛 물비늘, 그것은 빛과 물의 감미로운 이중주였으며 역동적인 생멸의 무한 변주였다. 그 아프도록 아름다운 윤슬의 군무에 한동안 나를 잊었다.

끝없이 빤짝이는 윤슬은 생명의 맥동이다. 맥동은 생명의 근원적 에너지인 파동이며 진동이다. 그러나 어찌 윤슬뿐이랴.

우주는 총체적으로 끝없는 에너지의 진동이다. 철학자 화이트 헤드가 "모든 궁극적 요소들은 본질적으로 진동한다"고 표명했듯이, 극소단위의 입자와 전자기력에서부터 거시 세계의 천체와 중력에 이르기까지 물질을 이루고 있는 모든 형태와 힘은 진동한다. 그리고 하나의 진동이 일어나면 그 주위의 것들이 연쇄적으로 반응하는 공조현상인 '공명진동'이 일어나게 된다. 더욱이 진동의 주체는 철학자 베르그송이 주창한 진화론적 '엘랑 비탈(생명의 비약)'을 내포하고 있다. 엘랑 비탈은 우주 만유가 지닌 것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움직여 마지 않는 생명의 충동과 창조의 욕구를 의미한다. 결국 그것은 진동의 견인과 추동의 에너지가 된다.



아무튼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거듭되고 거듭되어 다함 없이 거듭되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 연기라고 한다. 부연하면 우주 속의 일체의 사물과 현상이 그물처럼 연결되어 시간과 공간적으로 상호의존하고 작용하여, 서로를 드러나게 하고 변하게 하는 무한관계인 연기적 세계라는 의미이다. 법계 연기의 깨달음은 이러한 생명현상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며, 세계는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자각이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것이다. 따라서 꽃 한 송이 수줍게 피어나도, 나비의 하늘대는 날개 짓에도, 매화 바람에 흩날려도, 풀잎 끝의 이슬이 속절없이 떨어져도, 달빛이 창을 훔쳐도, 솔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에도 온 우주는 진동한다. 아니 보이고 들리고 말하는 그 모든 것이 생명의 맥동이며 그 맥동은 무한 순환하는 '불멸의 굽이침'이다.

봄이 익어간다. 산하대지에 생명력 충만한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본다. 그것은 환희의 찬가다. 이제 그 불멸의 굽이침으로 지상 최대의 쇼가 시작된 것이다. 바야흐로 때는 연분홍 치마가 꽃 바람에 휘날리는 봄이다. '오메, 바람 나것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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