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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 산책] 한국 개신교의 첫 세례

옥성득 교수 / UCLA 한국기독교학

1879년(고종 16년) 만주의 개항도시 우장(영구)에서 의주 청년 4명이 세례를 받았다.

한국 개신교 첫 세례였다. 1876년부터 로스 목사가 조선과 청의 국경 무역이 허락된 고려문에서 전도하고 한문 성서를 반포한 결과였다. 이때 로스의 어학교사 이응찬은 한문 복음서를 번역하고, 백홍준과 이성하는 의주로 돌아와 전도했다. 스코틀랜드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로스 목사는 이들의 세례 소식을 듣고 감격스럽게 말했다.

"매킨타이어는 글을 아는 4명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이들은 놀라운 추수를 약속하는 첫 열매들이다. 비록 지금 한국은 서양 국가들과의 접촉을 철저히 막고 있지만, 쇄국은 곧 무너질 것이다. 또 한국인은 중국인보다 천성적으로 꾸미지 않고 종교성이 많으므로, 그들에게 기독교가 전파되면 신속하게 퍼질 것이다. 작년에 글을 아는 4명의 한국인이 세례를 받았고,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탐구하는 11명이 더 있으며, 동일한 수의 다른 사람들이 자기 민족을 위해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준비하는 문서사업을 위해 7~8일이 걸리는 우리 선교지부까지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기독교회를 향해 열려있는 새 민족, 새 나라, 새 언어가 있다".

변경도시 의주에서 압록강과 고려문은 새 진리를 수용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문지방을 건너자 쇄국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신흥 중산층이자 서구문화에 개방적이던 의주 상인, 양반들로부터 차별받던 장돌뱅이들을 불러 조선 예수교인의 조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국법이나 목숨보다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가 더 소중했기에, 의주에서 영구까지 천 리 길을 걸어가 신앙을 고백했다. 풍성한 추수를 약속한 첫 열매인 이들, 기존 질서를 넘어 열린 미래를 향해 나아간 이 개척자들을 통해 한글성경이 번역되었고, 미국선교사들이 오기 전인 1880년대 초 우장과 의주에 한국인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개신교는 이들과 자녀에게 윤리의식과 소명감을 불어넣어 북한지역에 근대 자본주의를 일으켰다.



오늘 한국교회와 한인교회가 건너야 할 강, 열어야 할 문, 넘어야 할 문지방은 무엇일까. 낯선 곳을 향해 울타리를 넘는 자발적 주변인을 통해 하나님은 새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sungoak@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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