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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산신제 거부한 크리스천 도지사

[LA중앙일보] 발행 2015/03/17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5/03/16 21:11

이종호/논설위원

20년 전 쯤 한국에 있을 때다. 신문사에 새 윤전기가 들어오거나 새 취재차량을 구입하면 '고사'를 지냈다. 떡이며 과일에 돼지대가리까지 올려놓고 술을 따르며 무사고를 기원하는 자리다. 임직원들이 돌아가며 절을 하는데, 신앙적인 이유로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순서가 되면 술을 따르고 넙죽넙죽 절을 했다.

미국에 와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아무도 절을 강요하지 않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면서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신론자이면서도 안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것을 보며 '그래도 한국 직장인데' 싶어 조금 놀랐고, '그래서 미국이구나' 하며 더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주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일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원희룡(51) 제주도지사 이야기다. 원 지사는 꽤 촉망받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구설에 오른 연유는 이렇다. 제주도에서는 해마다 한라산 산신제가 열린다. 산신령에게 태풍.장마 같은 자연재해나 전염병이 생기지 않도록 기원하는 제사다. 이 행사에서 첫 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초헌관을 도지사가 맡도록 되어 있다. 제주도의회가 2012년 제정한 조례가 그렇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인 원 지사가 신앙적인 이유로 그 역할을 부지사에게 대신하게 했다는 것이다.

찬반양론이 뜨거웠다. 산신제를 전통문화 행사로 봐야지 굳이 종교 의식으로 생각해 집례를 거부한 것은 속 좁은 처사였다는 것과, 아무리 도지사라도 개인적 신앙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조례 제정 자체가 종교의 자유에 위배되는 잘못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여론은 원 지사를 비난하는 쪽으로 좀 더 많이 기울었다.

이해가 간다. 기독교 이야기만 나오면 비난부터 하고 보는 한국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 이는 그간 개신교가 보여준 배타성, 편협성 그리고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적 행동 등으로 인한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경우는 원희룡 지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이 민주 시민사회의 기본정신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민주 시민사회란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행동이라도 공동체에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독재-민주, 진보-보수 같은 정치적 영역에만 국한될 일이 아니다. 학문, 사상, 예술,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위협받으면 독선과 독단의 전체주의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기독교가 비난받고 있는 것은 이런 상식을 무시하거나 경시한 이유도 크다고 본다. 타 종교인을 배려하지 않는 막무가내식 전도와 전통 문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행동들이 그 예다. LA한인타운에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인쇄된 피켓이나 어깨띠를 두르고 마켓 앞이나 대로변에서 목청껏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확성기 소리가 어찌나 큰지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눈살을 찌푸린다. 이런 것이 시민의식 결여의 단적인 예다.

하지만 원 지사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그는 자신의 신앙적 가치관에 따라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 사회적 피해를 양산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도지사라는 이유로 제사 의식을 거부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편향이고 편견이다. 불교신자에게 십자가를 선물하는 것이 무례를 넘어 폭력이듯, 기독교인 도지사에게 산신제를 강요하는 것도 전통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다수의 폭력일 수 있다.

현대는 다문화, 다종교 시대다. 그만큼 더불어 살기 위한 관용과 배려가 더 중요해 졌다.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미국이 요즘 왜 모든 공립학교에서의 특정 종교 의식을 금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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