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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홈리스 마약중독자의 마라톤 완주

김완신/논설실장

지난 주말 LA마라톤이 열렸다. 화씨 90도를 넘는 폭염에 2만6000여명이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이번 대회와 관련해 데일리뉴스는 헤로인 중독을 극복한 홈리스 참가자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29세 닉 매튤리치는 밸리지역에 소재한 알코올.마약 재활센터에 상주하면서 마약치료를 받고 있는 홈리스다. 9개월의 치료 과정 중 반을 이수했고 지난 5개월 동안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닉의 아버지도 마약중독자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10대에 이미 마약에 중독된 닉은 고등학교 시절 여러 번 학교에서 쫓겨났다. 돈까지 훔쳐 젊은 나이에 3번이나 감옥에 가는 바닥 생활을 전전했었다.

재활센터 규정상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닉은 마라톤에 출전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실내 러닝머신에서 체력을 단련했다. 다른 참가자들처럼 거리에서 실전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재활센터 CEO 켄 크래프트는 러닝화도 없었던 닉에게 신발을 사주며 격려했고 대회에도 함께 참가했다.

닉은 8마일 지점을 지날 때 무릎과 다리 통증으로 대회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끝까지 달렸다. 결국 6시간만에 결승선에 도착해 닉은 생애 첫 마라톤 완주기록을 남겼다. 닉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제까지 내 인생에서 시작한 일을 끝낸 적이 없었다"며 "마라톤은 나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켄 크래프트도 "닉의 완주는 실패를 딛고 이뤄낸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닉 외에도 이번 대회에는 2013년 그리피스파크 인근에서 뺑소니 차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남성이 의족을 착용한 채 참가해 7시간 30분만에 결승선을 끊었다. 차 사고로 병상에 있을 때 반드시 마라톤 대회에 나갈 것이라고 결심했는데 2년만에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라톤은 42.195km(26.2마일)를 뛰는 경주다. 육상 종목 중 가장 길다. 체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경기다. 특별한 장비도 없고 기술이나 요령이 승패를 좌우하지도 않는다. 흔들림없이 정직하게 한 발 한 발 결승선을 향해 달릴 뿐이다. 흔히 마라톤은 인생에 비유된다. 출발해서 결승점에 도착하기의 과정이 인생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마라톤이 남긴 이야기는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감동적이다.

지난 2월 15일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마라톤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가 펼쳐졌다. 케냐 여자선수 하이븐 응게티치는 1등을 유지하다가 결승선을 1312피트(400미터) 남기고 갑자기 쓰러졌다. 의료진들은 휠체어를 가져가 대회 포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하이븐은 단호히 거절하고 손과 발로 도로를 기어 결승선에 도착했다. 3시간4분2초의 기록이다. 하이븐이 결승선 2미터를 남겨 놓은 지점에서 2등이 앞서 들어가면서 3등이 됐다. 무릎과 팔꿈치에서는 피가 흘렀고 손바닥에는 돌이 박혔다. 대회 디렉터인 존 콘리는 "하이븐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이라며 2등과 같은 액수의 상금을 지불하는 파격을 베풀었다. 그녀는 "경주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라톤 인구는 매년 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51만8000명이 대회에 출전해 완주했다. 1980년 14만3000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마라톤은 단순히 신체단련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인체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만큼 극기와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스포츠 심리학자 탐 홀랜드도 마라톤을 시작하는 동기의 상당 부분은 신체적보다는 정신적 목적에 있다고 설명한다.

마라톤은 함께 출발하지만 결국은 혼자 뛴다. 4만 번의 발걸음을 쉼없이 내디뎌야 하는 외롭고 힘든 경주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도 단 한명의 선수, 내가 있을 뿐이다. 닉과 하이븐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가 그 어떤 우승보다도 더 밝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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