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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한국 결혼식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종호/논설위원

#. 25세 이상 미국 성인 절반이 미혼으로 산단다. 그것도 돈 때문에. 지난 해 발표한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나이 들면 누구나 가던 시집 장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결혼이 이젠 가진 자만 누리는 '사치품'이 되고 있다니.

그래도 세월 잘 만난(?) 덕에 나는 만 29세에 결혼을 했다. 24년 전이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요즘은 어떨까? 한국 통계청이 지난 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한국 남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32.3세다. 여자는 29.6세. 1990년엔 남자 27.8세, 여자 24.8세였다. 20여년 만에 남녀 모두 대략 5년쯤 결혼이 늦어진 것이다.

왜 일까? 공부하랴, 직장 잡으랴, 일하느라 바빠서 사람 만날 시간이 없어서? 하긴 빈말은 아니다. 결혼이 점점 더 학벌, 외모, 직업 등 스펙에 따라 결정되는 '거래'가 되고 있음을 각종 통계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중앙일보 보도 역시 그런 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기사에 따르면 30~35세 미국 남성의 경우 대졸자는 76%가 결혼을 했지만 고졸자의 혼인 비율은 절반이 못됐다. 소득으로 보면 더 냉혹하다. 소득 최상위 10% 그룹은 83%가 결혼을 했지만 최하위 25%에 속한 남성은 50%만 혼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약육강식, 승자독식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 피 튀기는 싸움에서 이긴 수컷들만 암컷을 독차지하는 비정한 세계!



#. 최근 석 달 새 서울과 워싱턴DC 두 곳의 결혼식을 다녀왔다. 거기서 한국식과 미국식 결혼의 전형을 보았다.

한국의 예식장은 듣던 대로 '공장'이었다. 주말, 전문 웨딩홀에선 거의 1시간 단위로 서너 쌍의 부부가 동시에 '찍혀 나오고' 있었다. 신랑 신부들은 모두가 똑같이 입고 꾸미고 입장하고 주례사 듣고 사진을 찍었다. 하객들 역시 하나같이 축의금 봉투 전하며 눈도장 찍고 식이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식당으로 몰려가는 모습이었다. '편리'라는 명분으로 아예 온라인 계좌로 주고받는다는 축의금도 퍽 '한국적'이었다.

한국의 결혼식이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기성품이라면 미국 결혼식은 아직은 홈 메이드 수제품이다. 무엇보다 신랑 신부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점이 느껴진다. 한국의 결혼이 사전 준비며 초대받는 하객들이며 많은 점에서 부모의 행사라는 점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장소도 개성적이다. 교회나 호텔, 공원, 와이너리, 집 정원, 멋진 레스토랑 등 어디서나 한다. 우리 신문의 어떤 필자 딸은 바닷가 백사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이번에 내가 참석한 곳은 군 부대 안의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었다.

몇 시간씩 계속 되는 피로연도 미국 결혼식의 특이함이다. 신부와 신부 아버지가, 또 신랑과 신랑 어머니가 함께 춤을 춘다. 하객들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남아 마음껏 먹고 마시고 춤추며 신랑 신부를 축복하고 함께 즐거워한다.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에 길들여진 이민 1세 나로서는 솔직히 이런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이런 게 훨씬 더 의미 있는 결혼식 풍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체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들여서 함께하는 특별한 이벤트. 그래서 정말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하고 또 그런 사람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미국 결혼식이 좀 더 결혼식답다는 느낌이랄까.

#. 어느 쪽이 더 좋고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화의 차이, 관습의 차이일 뿐이니까. 그렇긴 해도 '초스피드'로 이어지는 요즘 한국 결혼식은 무엇인가 중요한 것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세계 이혼율 1위의 오명대로 어렵사리 결혼을 하고서도 갈라서는 부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점점 가진 자들의 과시용 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한국 결혼식의 경박함, 천박함이 멈출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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