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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희대의 폭군 만든 고부갈등

이종호/논설위원

조선시대 인수대비는 세조의 맏며느리이자 성종의 어머니다. 남편(덕종)이 일찍 죽는 바람에 국모가 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아들이 왕이 된 덕에 대왕대비가 됐다.

그는 아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하지만 며느리 윤씨가 늘 못마땅했다. 후궁에서 중전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랬고 초라한 집안도 불만이었다. 어렵게 보위에 오른 아들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런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좋을 리 없었다.

윤씨가 아들을 낳으면서 관계는 더 악화됐다. 며느리가 미워도 손자는 좋은 법. 결국 시어머니 인수대비는 1년도 안 돼 모자 사이를 떼어놓고 말았다. 이후, 안 그래도 자신의 입지에 불안을 느끼던 윤씨는 성종의 얼굴에 손톱자국까지 내는 투기를 부렸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윤씨는 끝내 폐비가 되고 사약까지 받았다. 연산군은 바로 그 폐비윤씨의 소생이다.

연산군은 포악했다. 어머니의 일을 알게 된 후엔 복수의 화신이 됐다. 급기야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할머니 인수대비를 때려 병석에서 숨지게 하는 패륜까지 저질렀다. 연산군 시절은 조선 역사의 가장 어두운 한 장면으로 기록됐다. 연산군이 이렇게 희대의 폭군이 된 것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뿌리 깊은 고부갈등이 발단이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지난 주말 한인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40대 며느리가 70대 시어머니를 살해했다. 불을 지르고 사체를 토막까지 낸 엽기살인이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경제적 갈등이 원인이었다.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서글픈 세상이다. 무섭기도 하다. 어쩌다 시절이 이렇게 흉포해졌을까.

이렇게까지 극단은 아니어도 고부갈등은 예나 지금이나 가정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주범이다. 가장 큰 원인은 서로의 역할에 대한 기대 차이일 것이다. 가족 문화의 차이, 가치관과 인생 목표의 차이에 따른 소통 단절도 이유일 수 있겠다. 이번 사건처럼 돈을 둘러싼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해법은 없을까. 한 방송사의 설문 조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시어머니들에게 물었다. "며느리가 가장 얄미울 때가 언제였나요?" 가장 많은 대답 다섯은 다음과 같았다.

1위, 내 아들 들들 볶으며 왕비 노릇 할 때. 2위, 시어머니인 내 앞에서 내 아들 흉볼 때. 3위, 같은 여자로서 그냥 이유 없이 밉다. 4위, "어머니 요즘은 그렇게 안 해요"라며 은근히 무시하고 가르치려 들 때. 5위, 딸같이 여긴다 했더니 정말 자기가 딸인 줄 알고 퍼질러 있을 때.

며느리들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언제 시어머니가 제일 밉고 야속한가요?"

1위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였다. 2위, 친딸처럼 대한다고 해놓고는 시누이와 너무 다른 차별대우를 할 때. 3위, 당신이 예전에 시어머니한테 당했던 그대로 복수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4위, 음식이나 생활습관 등 아들에 대한 모든 것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다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때. 5위, 툭하면 다른 집 며느리와 비교할 때, 특히 시집 올 때 '혼수를 뭐 해왔니' 라며 들춰낼 때였다.

이들의 대답 속에 답이 들어 있다. '뻔하지만' 위 대답처럼 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서로 반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좋은 며느리, 좋은 시어머니가 따로 있지 않다.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듯 내가 먼저 보기 나름이다. 예쁘고 보면 예쁘고 밉게 보면 밉다. 내가 좋은 며느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좋은 며느리가 되고 내가 좋은 시어머니라고 여기는 순간 좋은 시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며느리도 언젠가는 늙는다. 시어머니도 며느리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 사실만 기억해도 이 세상 고부갈등의 반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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