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고액 연봉 은행원 포기…꿈 찾아 경찰에 투신"

비토 팔라졸로 LAPD 올림픽경찰서 신임 서장

10세 때 이민 와 부모님들 막일
궁핍했지만 삶의 교훈 배운 시기
1992년 LA 폭동 때 현장에 투입
전쟁터 같은 모습에 마음의 상처
한인타운 사건사고 잇따르는 건
술집들 새벽까지 불법영업 때문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 이탈리아 이름을 부를 수 있는 팁을 달라. 또 한인들이 뭐라고 부르면 좋겠나.

"위아래 입술을 포갰다가 공기를 내뿜으면서 '팔라', 영어 Z 발음을 하며 조로를 외치듯 '졸로'라고 하면 된다. 팔라를 말 할 때는 남성미 넘치는 거친 장수를, 졸로를 말 할 때는 다소곳한 소녀를 떠올리며 말하면 아주 좋다. 그래도 어렵다면 캡틴 P로 부르면 된다. 동료 경관들은 다들 나를 캡틴 P로 부른다."

▶우린 악연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한국을 싫어한다는 말이 2002년 이후 생겼다는 얘기를 알고 있다. 왜 인지 알고있나.



"물론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이탈리아 축구를 자존심으로 여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약팀이라 생각했던 한국에 져 월드컵에서 탈락했다. 한국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악연도 아니다. 한국 팀은 당시 매우 강했다. 단지, 그 경기의 심판이 문제였다(웃음)."

▶이탈리아를 논할 때 한인들은 늘 성격이 비슷한 민족이라고들 한다. 이미 한 달을 한인타운 관할 경찰서장으로 지냈다. 직접 겪은 한인들은 어땠나.

"맞는 말이었다. 열의를 다해 친구를 사귀고, 타문화를 존중해 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똑 닮았다. 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커뮤니티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법도 비슷하다. 한인들에게서 배울 점도 많았다. 늘 따듯하게 인사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모습은 감동스러웠다. 오길 잘했다."

▶10세 때 이탈리아에서 이민 왔다고 들었다. 이민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나. 이 또한 한인 커뮤니티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어려웠다. 영어를 못하는 아버지는 공장에서 막일을 했고, 어머니도 바느질을 하며 간신히 나와 형제들을 먹이셨다. 그래도 일 한만큼 벌 수 있다는 것, 노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삶의 법칙을 배울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민자로서 어렵게 살았던 시절, 도움도 많이 받았다.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특히 경찰서장으로서 수많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큰 힘이 되고 싶다. 받은 만큼 돌려줄 때다."

▶경찰관으로 언제 임관했나. 그동안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1990년 임관했다. 스물일곱 나이로 다른 동료보다 많이 늦은 때였다. 이후 25년 동안 순찰 경관에서부터 본부 수사관까지 두루 거쳤다. 한인들의 주요 활동 지역인 올림픽, 램파트, 윌셔 지역에서 근무하는 건 처음이다."

▶스물 일곱이 되도록 뭐 하다 경관이 됐나.

"사실 난 잘 나가는 은행원이었다. 연봉도 많았고 좋은 투자 상품을 개발해 유명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스스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보다 매력적이고,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을 원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의 꿈을 다시 들춰봤다. 늘 일기장에 경찰관이 되겠다고 적었었던 걸 봤고, 가슴이 뛰었다. 늦깎이로 준비해 턱걸이 점수로 가까스로 경찰 뺏지를 달았다."

▶경찰관은 목숨을 건 직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1992년 LA 폭동 때 현장에 투입됐었다. 많은 이들이 경찰을 향해 총을 쐈다.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날 '죽는구나'를 수십 번 되뇌며 이를 악물고 임무를 수행했었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작전은 마쳤지만, LA가 전쟁터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 인생에서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기억이다. 또 서전트 시절에는 시속 90마일 가까이 고속으로 달리며 용의자들과 추격전을 벌인 경험이 있다. 그러다 용의자 차량이 멈춰 섰었는데, 그들의 차로 다가가는 나에게 용의자들이 차로 돌진했었다. 맨손으로 총을 든 용의자의 목덜미를 잡아 바닥에 내리꽂았다."

▶신임 서장으로 온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요즘 한인타운 뭐가 문제인가.

"술이 문제다. 한인타운은 각종 레스토랑과 클럽, 노래방, 펍 등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오전 2시 이후에는 모든 업소가 술을 판매하지 못하는데도 몰래 술을 팔고 있다. 이로 인해 교통사고, 성범죄, 폭행 사건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바이스(Vice) 유닛 경관들과 직접 타운을 새벽까지 순찰했다. 도우미 여성들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젊고 건강한 여성들이 아주 작은 방에서 처음 보는 남성의 품에 억지로 안겨 억지로 웃고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타운의 도우미들은 술자리에 함께하기 때문에 성범죄에 많이 노출돼 있다. 도우미 역시 더 큰 범죄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노상강도, 차량 내 물품 도난 사건 등이 계속해서 증가 추세다."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있나.

"그렇다. 본부와 경찰서 경관들이 머리를 모으고 있다. 일단 캠페인을 통해 업주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게 얼마나 지역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지 알릴 것이다. 또 무엇보다 엄격한 단속이 이어질 것이다. 불시에 이뤄지는 단속이 많을 것이며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엄중한 조치를 할 것이다."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역할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지적이다. 시민들도 경찰들과 서로 바라보며 호흡을 맞춰야 한다. 우리 경찰서는 순찰 인력이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한인방범대원들이 나서서 자원 봉사로 순찰을 돌고 있다. 또 한국어를 못 하는 경관들을 위해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통역 봉사자들이 봉사를 하기도 한다. 모두 한인들이다. 이들처럼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서로 필요하다."

▶서장으로서 근무하면서 목표를 세운 게 있나.

"모두가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자. 또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자. 그것뿐이다."

▶서장은 늘 일이 많다고 들었다. 진짜로 쉬면서도 일 하나.

"그런 편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아내를 위해 늘 요리를 한다. 이탈리아 남자 아닌가. 피자와 파스타, 라자냐는 언제든 어떤 재료로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푸드 이벤트를 하면 솜씨를 발휘해 보겠다(웃음)."

▶마지막으로. 당신은 어떤 경찰인가.

"헌신하는 경찰, 커뮤니티의 식구가 되고 싶은 경찰, 해야할 일을 하는 경찰, 그것을 영예롭게 여기는 경찰이다."

오세진 기자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