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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러시아 출신 택시기사의 '우울증'

수잔 정/소아정신과 전문의

체력이 우람하고 인상이 거칠어 보이는 중년 남성을 응급으로 진료하게 됐다. 증세는 이미 오래 전 시작됐지만 이제라도 빨리 약물치료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심리학자가 그 남성을 급히 보내왔다.

러시아 출신인 그는 40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와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다. 4~5년 전부터 이유없이 몸이 피곤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언제일지 모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뿐 아니라 30여년간 결혼해 살고 있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딸의 죽음까지도 생각했다.

몸의 이곳 저곳, 특히 왼쪽 다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의사는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잠을 못자니 아침에는 일어나기 힘들었고 일할 의욕도 사라져갔다.

"혹시 성장한 자녀들이 집을 떠난 후 외로움 같은 감정을 느꼈나요?" 자녀들이 직장을 잡아 떠난 때와 그의 병이 시작된 시기가 비슷해 내가 물어 본 말이다. "그런 감정은 못 느꼈는데요." 빈둥지 신드롬 같은 느낌을 자신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4~5년 전에 시작된 우울증상도 알아차렸을텐데….



매사가 귀찮다보니 아내와의 관계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2년 전부터 아내는 집을 떠나서 별거생활을 시작했다. 이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는 주치의를 찾아갔다.

그의 우울병 증세를 진단한 의사가 급히 정신과로 환자를 의뢰해 온 덕에 그는 일생 처음으로 정신과 의사를 보게 된 것이다. 가족력을 물어보니 그는 한마디로 대답한다. "저의 아버지와 세명의 형제들은 모두 항상 조용합니다."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는 그의 형제들이 항상 조용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우울해서 말이 없는지, 본래가 과묵한 성격인지, 전쟁을 치른 후의 후유증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은 행복했고 아버지는 조용했다는데, 정작 본인이 어떻게 지냈는지는 대답이 없다. 아내가 떠난 후 2년간 그는 일을 하지 못했다.

"주요우울병(Major Depressive Disorder)은 남성의 10~15%에서 일생 중 한번은 걸릴 만큼 흔한 두뇌질환입니다. 대부분은 가족력이 있고, 심리적으로 상실감을 느끼거나 환경에 큰 변화가 올 때에 생깁니다. 조기에 진단하고 치료를 열심히 하면 치유가 되지요. 그러나 환자처럼 오래 방치해 두면 직장과 결혼생활에 문제가 옵니다. 우울한 환자도 참기 힘들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고생하는 것을 보면 가족들은 더 힘들겠지요. 아내에게 진단명을 알려주시고, 그 병으로 인해 화를 많이 냈고 무관심했었다는 것을 설명해 드리세요. 가족의 이해와 사랑이 항우울제 복용만큼 중요하니까요. 우울병에 걸리면 몸이 아프고, 늘 피곤하며, 잠을 못자고 식욕이 불규칙해집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도 우울증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자신을 걱정해 주는 딸에게 우울증 이야기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항우울제도 복용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얼마나 나의 지시를 따를지는 걱정이 된다. 그래도 가끔씩 연락을 취한다는 딸의 도움을 받기 바라면서 다시 한번 우울증이라는 두뇌의 병이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력에 새삼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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