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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잘 죽고 싶은' 사람들의 선택

안 유 회/선임 기자

'죽음의 의사'로 불렸던 잭 케보키언을 기억할 것이다. 1990년대 불치병 말기 환자의 자살을 도와 전국적으로 안락사 논쟁을 불러 일으킨 인물인다.

그는 사형 집행이 증가하던 80년대, 사형수에게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죽음에 관심을 가졌다. 네덜란드로 건너가 안락사를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130여 명의 안락사를 돕다 99년 2급 살인혐의로 기소돼 8년 6개월간 복역하던 중 안락사를 돕거나 자문.상담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됐다. 그는 2011년 사망했고 여전히 미국에선 안락사가 불법이지만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안락사는 '의사가 보조하는 죽음(Physician Assisted Dying.PAD)'으로 바뀌었다. 두 가지 죽음엔 큰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의사가 죽음의 버튼을 누르지만 PAD는 환자가 직접 누른다. 투약을 환자가 하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투약을 하지 않으면 된다. PAD는 흔히 존엄사(Death with Dignity)로 불린다. 법안의 명칭은 다르지만 존엄사는 3개 주에서 합법적이고 최근 가주도 주상원 보건위원회를 통과했다. 존엄사 법안이 상정됐거나 준비 중인 주는 20곳이 넘는다.

죽음에 이르는 방식과 이름이 바뀌었다 해도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행위가 합법화까지 이른 것은 윤리적, 사회적, 종교적, 법적으로 엄청난 변화이다. 6개월 이상 살 수 없는 환자에 한정됐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죽을 권리는 이제 살 권리와 함께 보편적 권리로 인정받는 추세가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있는 목숨을 거두는 것은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신의 일이었다. 이런 인식의 변화에 케보키언의 공헌을 뺄 수 없다. 그의 행위는 비록 불법이었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스로 목숨을 거두면 안 된다는 도덕 만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도 돌아보게 했다.

최근엔 삶의 질과 함께 죽음의 질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취재차 만난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들은 고백이다. 집안의 어른이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가족회의를 열었다. 중환자실과 집. 집을 권유하기로 했다. 집안 어른도 선뜻 집을 택했다. 의사도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병은 어차피 낫지 않을 것이고 연로한 환자에겐 치료도 고통일 수 있다. 또 삶의 마지막 시간을 대부분 차가운 기계와 보낼 것이다. 어쩌면 기계가 임종을 지킬 수도 있다.

이들은 환자를 집으로 모셨다. 통증을 없애고 병의 진행을 막는 치료를 했다. 가족들은 순번을 정해 환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평소엔 말만 가족이었지만 그날 이후 함께 하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고 시간의 질도 높았다. 서로 이별을 연습하는 시간이 흐르며 순번이 아닌 가족들도 귀가가 빨라졌다. 자연스레 가족이 모이는 시간도 많아졌다. 거의 모든 가족들이 임종을 지켰다. 장례 뒤에도 회한은 적었고 추억은 많았다.

LA의 한 한인은 자식들에게 자신이 사인한 문서 하나를 남겼다. 자신의 판단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불치병에 걸렸거나 단순히 생명만 연장할 수밖에 없는 병이라면 치료하지 말고 자연사 할 수 있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본인이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의사를 분명히 하면 법적으로 효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잘 죽고 싶어서"였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면 법이 변한다. 불치병 환자에게 죽음의 선택권은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추세는 이런 개인들의 생각의 반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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