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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글자 없는 경전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일세를 풍미한 대문장가 소동파(북송 1101년 몰) 일찍이 유불선 모두에 통달한 그는 서른네 살에 지방 태수로 부임한다. 우쭐하는 마음으로 이웃 옥천사의 승호대사를 찾았다.

누군지를 묻는 대사에게 소동파는 비꼬듯 "칭가요"라고 답한다. 칭(秤)이란 저울 '칭'자로 자기는 상대방의 학식이나 도력을 저울질하는 사람이라는 거만한 비유이다. 대사가 모른 척 "아니 그런 성씨도 있소이까?"라며 껄껄 웃다가, 대뜸 "으악!"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자 소동파는 기겁하며 나자빠진다. 대사가 소동파를 가까이 불러 넌지시 "칭거사 방금 그 소리는 몇 근이나 나가는고?"하니, 소동파는 망연자실 말이 없다. 알량한 세속의 알음알이로 언감생심 생각 이전의 세계, 언어 너머를 들여다본 백전노장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기고만장 오만불손했던 소동파는 깊이 뉘우치고 불법에 귀의한다. 어느 날 상총선사를 뵙고 지남이 될 만한 법문을 청하니, 선사는 "무정설법은 듣지 못하고 어찌 유정설법만을 듣고자 하는가"라며 무정설법을 듣도록 권한다. 무정(無情)설법이란 인간만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과 같은 자연물도 설법을 한다는 뜻이다. 소동파는 무정설법이라는 화두를 들고 어느 깊은 계곡을 말을 타고 지나다가, 떨어지는 폭포소리에 한순간 눈과 귀가 열려 그야말로 활연대오하게 된다. 법열에 겨운 나머지 그는 이런 깨달음의 노래를 남겼다.

"계곡의 물소리 그대로가 부처님의 법/ 산빛인들 어찌 그대로 청정법신 아니든가/ 밤 새들은 팔만사천의 법문/ 뉘 있어 그 소식을 물으면 어떻게 들어 보여줄 수 있을는지"



자연은 사계절 글자 없는 경을 아낌없이 노래한다. 자연은 줄 없는 거문고인 무현금이다. 그 노래는 존재 그대로를 드러내고 진리의 꽃을 피우는, 줄 없이도 저절로 울리는 무현금의 오묘한 가락이다. 그것은 최상의 악기이며 그 가락은 우주의 율려이고 궁극의 소리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생명의 춤사위이며 다양한 의미로 가득 한 그 신비한 가락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바람 멎으면 솔 울음 고요해지고 떨어지는 꽃잎은 바람의 뜻을 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온갖 번뇌와 미혹의 에너지로 활활 타고 있어, 그 아름다움도 참됨도 거룩함도 있는 그대로 듣지 못한다. 오직 자기정화를 통해 자유해진 마음만이 그것을 들을 수 있다.

얼마 전 법정스님 5주기를 보냈다. 스님은 2009년 봄 길상사에서 "눈부신 봄날 새로 피어난 꽃과 잎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십니까"라고 물으며, 각자 이 험난한 생을 살아오면서 가꿔온 씨앗을 이 봄날에 활짝 펼쳐 보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이렇게 법문을 맺었다.

"봄날은 갑니다. 덧없이 갑니다. 이 자리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는 새로 피어나는 꽃과 잎들이 전하는 거룩한 침묵을 통해서 듣길 바랍니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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