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득'보다 '독'이 되는 인맥
김 동 필/선임 기자
한국 정치인이 LA를 방문하면 꼭 열리는 행사 중의 하나가 간담회다. 한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것이 취지다. 하지만 상당수의 간담회는 알맹이 없이 끝난다. 보도용 사진 한장 찍고, 밥 먹고, 정치인의 자기자랑 듣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대충 마무리되는 식이다.
추후 한인들의 의견이 어떻게 정책에 반영됐는지에 대한 피드백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심지어 올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가는 정치인도 있다.
그럼에도 주최측이 굳이 돈 써가며 이런 행사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인과 친분을 쌓기를 위해서다. 그의 인맥에 포함되고 싶은 것이다. 간담회를 계기로 정치인에게 눈도장 찍고 '명함'이 그럴듯한 인사들로 자리를 채워 은연 중 자신의 존재감도 보여주려 한다. 그렇다 보니 참석자 중에는 "해당 정치인과는 일면식도 없는데 하도 오라고 해서 바쁜데도 억지로 갔다"는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한국 정치권과의 인맥 쌓기에 열심인 이유는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당장 차기 평통회장 임명을 앞두고도 한국 정치권의 입김설이 회자되고 있다. 어떤 유력 인사가 어느 후보를 밀고 있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능력 대신 인맥이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치인 줄대기는 미국 로컬정부 선거철에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후보들을 불러 후원행사를 연다. 지난해 예비선거 당시 어떤 후보는 1주일에 신문사를 두 번이나 찾아왔었다. 각기 다른 인사들이 초청해 언론사 순회를 한 것이다.
한인사회의 의견이나 요구사항 전달이 목적이 아니라 후원을 빌미로 친분을 쌓으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다. 그 정치인과의 두번째 만남에서는 어색한 웃음만 주고 받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겠지만 그 정치인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인맥은 중요한 자산이다. 때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놓기도 하는 것이 인맥의 힘이다. 세상사라는 것이 꼭 원리원칙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면 세상살이는 한결 편해진다. 조정래 작가의 인기소설인 '정글만리'에 나타나는 중국인들의 '콴시(關係)'라는 것도 결국은 인맥이다.
하지만 인맥에도 양면성이 있다. 잘못 얽히면 없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잘못 엮인 인맥으로 인해 잘 나가던 정치인이 하루 아침에 추락하고 고위층 인사들이 옷을 벗는 일도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인맥이라는 말에는 '뒷거래' '청탁' '편법' '특혜' 등의 음험한 단어들도 함께 떠오른다. 원래 부정적인 일들이 파괴력도 크고 기억에도 오래 남기 때문이다. 결국 인맥이라는 것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인사회에는 한미 양국에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분들이 꽤 많다. 본인의 인맥을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커뮤니티를 위한 일에도 활용할 수는 없을까. 화려한 인맥을 개인적인 이득이 아니라 한인사회를 위한 것으로 폭을 넓히면 어떨까 싶다.한인사회에는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는 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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