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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오늘 당장 냉장고를 비워야 하는 이유

[LA중앙일보] 발행 2015/04/14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4/14 08:30

오수연 문화특집부 차장

요즘 뜨는 예능프로 중의 하나가 바로 JTBC방송의 '냉장고를 부탁해'다. 연예인들의 냉장고를 직접 가져다가 그 안에 있는 재료들로만 유명 셰프들이 즉석에서 요리를 해준다. 15분 안에 요리를 끝내야 하는데다 셰프들 간의 경쟁구도가 있어 시청자들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먹방이 대세인 최근 트렌드를 제대로 보여주는 프로다.

이 프로가 주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다른 사람의 냉장고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몸짱 연예인들의 남다른 음식 재료들을 볼 수 있고 깔끔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지저분한 냉장고의 속사정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출연자들의 냉장고들을 보면 대부분이 적게는 2~3년, 많게는 유통기한이 10년은 넘은 재료가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저 오래된 걸 어쩌려고 냉장고에 넣어놨나 하고 웃다가 집에 있는 냉장고를 생각해 보니 웃을 일만은 아니다.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봤다. 뭘 그리 많이 넣어뒀는지 빈틈이 없다. 주방에서 메인으로 쓰는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그리고 차고에 넣어둔 작은 냉장고까지 그 많은 공간에 빈틈이 없다. 신기할 정도다.

내친김에 정리를 해보겠다고 차근차근 살펴보니 가관이다. 냉동고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는 닭가슴살과 삼겹살, 냉동채소, 소시지, 얼린 밥, 치즈, 떡, 만두, 우동 등 문을 겨우 닫을 수 있을 만큼 가득하다.

냉장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2~3개월은 됐음직한 밑반찬부터 유부 초밥재료, 어묵, 먹다 남은 참치와 된장국, 각종 소스, 샐러드 드레싱 그리고 김치. 이리저리 먹다 남은 김치 컨테이너만 4~5개는 족히 되어 보인다. 새로 무언가를 넣으려면 블록을 맞추듯 이리저리 재배치를 해야 할 만큼 포화상태다.

그래서 우선은 먹기 힘들 것 같은 재료들을 정리했다. 커다란 쓰레기 봉투에 한 가득히 나왔다. 그렇게 버렸는데도 이상하리 만치 가득하다. 그렇다고 멀쩡한 음식재료를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웠다. 냉장고 비우기 프로젝트(?)다. 앞으로 한 달간 최대한 장보는 것을 줄이는 대신 냉장고에 숨어있는 재료를 활용해 음식을 해 먹어 보겠다는 계획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오래된 재료만 가득한 냉장고에서 좋은 음식이 나오기 어렵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좋은 것으로 채우려면 우선 자리를 비워야 한다. 냉장고가 가득 차는 이유는 먹지도 못할 만큼의 많은 재료를 사오기 때문이다. 욕심이다.

너무도 바빠보이는 이에게 좋은 책 한 권을 권했더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다 할 수도 없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좋은 책을 읽기 위해서는 바쁜 스케줄을 쪼개서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여유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채우기 위해서는 포기가 먼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위를 비우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허기져야 밥이 더 맛있듯이 삶도 어느 정도 비워져야 살맛 나는 무언가를 좀 채워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달 후, 비워진 냉장고를 위해 장 볼 날을 기다리며 작심 한달 계획을 세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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