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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이민생활 속에 책은 나를 지탱하는 힘"…중고북세일 몰린 사람들

늦게라도 지식 목말라
교양있는 삶을 살고파
'종이의 매력' 포기못해

온통 디지털을 이야기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그 첨병이다. 사람들은 작은 모니터를 통해 정보를 구하는 데 익숙하다. 세상은 그래서 점점 빨라지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활자'의 쇠락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책은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종이의 향기에 흠뻑 취한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책을 잡으려 하는가. 책 안의 숨겨진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책의 매력 속으로 푹 빠져든 사람들이 있다.

4월 마지막 토요일(25일) 아침. LA한인타운 한복판에 있는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 옆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도서관에 있던 중고책을 헐값에 파는 날이다. 1000여 명도 넘는 인파가 몰렸고 얼추 6000여 권의 책이 새 주인을 맞았다.

책은 한 권에 50센트부터 5달러까지 망라되어 있었다. 대체로 1~2달러이니 책을 사랑하는 독서가들에게는 더없는 절약 찬스다.

올해 처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는 리처드 손(70)씨는 만화책을 수북하게 쇼핑백에 담았다.



"바쁜 이민생활 탓에 책읽기를 멀리했지만 이제라도 독서 습관을 키우고 싶어서 만화로 된 한국역사 책을 구입했습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이제라도 조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손씨는 만화역사책으로 재밌는 역사공부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LA한인타운에서 애프터스쿨을 운영하고 있는 서니 박(42)씨는 어린 세대들에게 한글책을 알려주는 보람이 크다.

"한글을 읽기 시작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독서 습관을 키워주고 싶어 한국 전래동화부터 청소년 미국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구입했습니다. '책은 평생 함께 하는 좋은 친구'라는 개념도 심어주고 책을 통해 많은 꿈을 키울 수 있게 독서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실비치서 북세일을 찾은 김치훈씨(77.보험업)는 "책이 좋아 8년 전부터 꾸준하게 행사장을 찾고 있다. 올해는 컴퓨터 미국법률상식 등에 관한 책을 구입했다"며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대화 소재로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고 예찬론을 폈다.

독서지도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도 있었다. 직장사역문화연구소(소장 권대식)의 독서지도자과정 학생인 심혜연(53.의류업)씨는 "프로그램 과정을 통해 책도 읽고 독후감으로 쓰고 토론하며 독서교육에 대한 학습상담 및 교육 자문을 수행하는 지도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중년으로 들어서면서 남보다 뒤처지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면서 자녀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싶어 독서를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며 자기 계발서를 구입했다.

아기와 함께 찾은 조은용(38.세일즈 엔지니어)씨는 시카고서 오렌지카운티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됐다. 조씨는 "시카고에서는 한국책을 구입하려면 너무 비쌌다. 아이가 어리지만 지금부터 책을 읽어주고 싶은 욕심에 동화책 구입에 나섰다"며 가방 가득 구입한 책을 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행사장에서는 추억을 건지는 이도 있었다. 자녀와 함께 찾아온 이세나(32.주부)씨는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집을 발견했다. 이씨는 "25년 전 읽었던 책을 LA서 발견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내가 읽었던 책을 읽어주고 싶어 몇 권 구입했다"고 기뻐했다.

북세일 행사를 빠짐없이 찾는다는 리처드 박(44.회계법인 근무)씨는 "이민생활이 정말 드라이하다. 이런 생활에선 책을 읽어 인문학적 교양과 감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지 모른다"며 "나에게는 한국책 독서가 이민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이라고 말했다.

매년 두 차례 이런 행사를 열고 있는 미키 림 도서관장은 "LA시의 총 72개 도서관 중 우리 도서관의 대출률은 6위를 기록할 만큼 한인들의 독서 열기가 뜨겁다"며 "25년 째 열리는 북세일에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북세일은 피오피코 코리아타운도서관(관장 미키 림)과 도서관후원회(회장 마크 최)가 주최한 행사로 올해로 25년째. 도서관후원회는 연간 후원금 10달러를 내면 북세일 공식 개장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먼저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음 북세일은 10월 말쯤 예정되어 있다.

이성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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