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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겨자씨에 들어가는 수미산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센터

'허허바다'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겨자씨 한 알 같은 인생을 노래한다. 그러니 매사에 삼가하고 겸허하라는 뜻이겠다.

"찾아가보니 찾아온 곳 없네/ 돌아와 보니 돌아온 곳 없네/ 다시 떠나가 보니 떠나온 곳 없네/ 살아도 산 것이 없고/ 죽어도 죽은 것이 없네/ 해미가 깔린 새벽녘/ 태풍이 지나간 허허바다에/ 겨자씨 한 알 떠있네" (정호승님의 시)

한편 세상은 살아도 산 것이, 죽어도 죽은 것이 없어 허허바다일 뿐이겠으나, 허허바다로 있으니 그 전부가 되겠다. 따라서 허허바다가 겨자씨 한 알이고 그 한 알이 허허바다를 품고 있다는 선(禪)적인 역설로 유추해석한다면, 비약일까. 아무튼, 경전에는 겨자씨와 관련된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불교의 우주관에서 겨자씨는 극히 작은 물질을 상징하며 지극히 큰 것은 상상 속의 영묘한 산인 수미산으로 표현한다.



유마경이란 경전에는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가고 모든 바닷물이 하나의 털구멍 속에 들어간다"는 법문이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이발이라는 학자가 귀종선사를 친견하고 이 황당(?)한 법문에 시비를 건다. 이발은 읽은 책이 만권이 넘는다 하여 이만권이란 별명이 붙은 사람이다. "스님, 겨자씨가 수미산에 들어간다면 모를까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간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말이 아닌지요?"라며 따지듯 묻는다.

선사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듣자하니, 그대는 만권이 넘는 책을 읽어 출세하였다지요?"라고 묻자, 그러하다는 이발의 대답에 이어지는 선사의 말씀 "허면 그 많은 책을 겨자씨와 다름없는 그대의 작은 머릿속에 어떻게 다 담았는고?" 이발이 그만 할 말을 잃고 만다. 그리고 문득 나름대로 깨닫는다. 머릿속에 만권의 책이 들어가는 이치와 겨자씨에 수미산이 들어가는 이치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라고.

겨자씨와 수미산의 예화는 얼핏 비현실적인 희론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물의 외형으로 감지되는 물리적 세계가 아니며 언어로 설명하려는 순간 그 의미는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그것은 형상 그 너머, 언어 밖의 언어의 세계로 오직 마음으로만 성취 가능한 묘오(妙悟)의 세계이다.

형상 그 너머의 세계는 본질이다. 인연으로 형성(연기)된 모든 존재의 본질은 '변한다'는 의미의 무상(無常)이다. 무상이니 영원한 실체가 없는 공(空)이다. 따라서 만물은 인연이 다하면 공으로 되돌아가거나,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요 없어도 없는 것이 아니어서 거대한 수미산도 겨자씨 한 알 속으로 녹아들 수가 있게 된다. 공한 것이 공한 것 속으로 들어가니 변함없는 공일뿐이며 그 모양과 크기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람도 그와 같아서 닫힌 마음이면 허허바다에 떠있는 겨자씨 같은 존재이지만, 텅 비워 통연히 열린 마음이면 온 우주를 담고도 남을 위대한 '작은 거인'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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