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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진료실에서 만난 107세 할머니

모니카 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한 달 전 내 생애 처음으로 107세 어른을 만났다. 그 어른은 전신에 퍼진 피부암 환자였는데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왠지 종일 기뻤다. 육신이 태내 시간까지 합쳐 108년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심장을 한 예로 생각해 본다. 이 할머니의 심장이 1분에 70번 수축하고 팽창하기를 108년 동안 했다는 것을 계산해 보면 참 하느님의 조화가 신비하게 생각된다.

자식이 없는 할머니는 간병인이 모시고 왔다. 자그마한 몸집으로 휠체어로 거동해야 하고 시력과 청력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간병인은 볼 연지, 눈화장까지 예쁘게 시켜주었고 할머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쓰는 차양 달린 핑크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목에는 가짜일 수밖에 없을 왕방울만한 진주를 주렁주렁 엮은 목걸이를 걸치고 있었다. 간병인이 아무개 의사가 병실로 들어 왔다고 한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 알려 주니 한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악수하는 나의 손등에 뽀뽀를 해 주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갈 때도 나의 굿바이 포옹이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며칠 후 나는 85세의 이민 1세 중동 출신 환자를 보게 되었다. 그 분은 임파암으로 캘리포니아에 주거지가 있지만 딸이 있는 동부에 가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치료 중간에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고 한다. 영어도 잘 하는 편이었다. 함께 온 아들과 환자의 얼굴은 수심으로 어두웠다. 의뢰를 해 온 주치의는 사연을 알고 있었다. 환자의 딸이 아버지를 남동생에게 떠 맡겼다는 것이다.



이 두 환자는 현재 미국 인구의 13%를 차지하는 4000만 노인들 중의 한 분 한 분이다. 노인이란 65세 이상을 말한다. 107세 할머니는 재산이 있는 모양이었다. 집으로 간병인이 매일 온다.

그러나 이민 1세인 중동 할아버지는 아들이나 딸에게 의존하고 있다. 지금은 본인이 거동할 수 있어 괜찮지만 성인 데이케어 신세를 져야하거나 양로원에서 살아야 한다면 거기서 오는 재정적인 부담은 엄청날 것이다. 미국 평균치를 볼 때 성인 데이케어는 1년에 약 1만8000불이 들고 양로원은 7만8000달러 이상이 든다. 이것은 질병 치료비를 제외한 금액이다.

지금 나는 남편의 전문 분야에 대한 학회가 열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와 있다. 이틀을 작은딸네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고 호텔로 이동했다. 아무것도 제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7개월 짜리 손주를 보면서 두 노인 환자 생각이 났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미국 가정에서는 1년에 평균 1만2000달러를 어린이 데이케어에 쓰는 것으로 나와 있다. 손주를 봐주는 보모는 제 아이를 싼 데이케어에 맡기고 차액을 벌기 위해 다른 집 아이를 봐주고 있다. 태어나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던 우리가 이제 준비 없이 오래 살게 되어 육체적, 경제적인 빚을 많이 지고 자식 세대에게 넘겨주는 짐이 무거운 것을 생각하니 그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기뻤던 마음이 자꾸 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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