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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너무 다른 한·중·일…갈등의 돌파구는 있다

한국의 석학 김용운 교수 재외언론인 대상 특강 지상 중계

일본, 승자의 논리가 정의인 사회
한국은 바람, 중국은 물, 일본은 불
한·일 갈등 뿌리는 1350년전 백강전투
역사 뿌리·민족적 원형 먼저 이해해야


지난 달 23~28일 한국서 개최된 '2015 재외동포언론인대회'에 참석했다.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개회식에는 LA중앙일보를 비롯해 미국·중국·유럽·동남아 등 세계 26개국 60여개 한인 언론사 대표와 기자와 한국 내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대회 주제는 재외 한인사회의 가장 큰 현안인 '복수국적 범위 확대에 따른 정책현안과 대책'. 참석자들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등 여야 정치권의 입장 설명을 듣고 몇 차례 토론을 거쳐 대정부 건의안을 마련했다. 또 2012년 도입된 재외선거의 현황 및 제도 개선 방향 등에 대해서도 선거관리위원회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었다.

한편 대회 첫날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재외언론인들을 상대로 '원형사관으로 본 한·중·일 갈등의 뿌리와 돌파구'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 강연의 주요 내용을 전달한다. 서울=이종호 논설위원>

#. 모든 민족은 저마다 고유의 문화적 원형이 있고 민족 고유의 문학, 정치, 역사도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유교 문화, 한자 문화 등 폭넓은 문화적 동질성을 갖고 있지만 지형적 풍토, 역사적 경험은 확연히 다르다. 이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각국의 역사와 문화가 발생한 '원류와 원형(原型)'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중·일 삼국은 언어와 사유방식에서부터 종교관, 역사관, 시간관 심지어 취미생활에 이르기까지 심층에 흐르는 원형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발현됐다. 똑같은 유교도 중국에선 실용주의적 학문으로만 존재했지만, 한국에서는 유교적 원리주의로 조상 숭배라는 종교가 되었다. 특히 수신-제가-치국-평천하(平天下) 사상은 모든 한국인의 관심을 관직과 정치에만 쏟게 하는 정치지상주의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승자가 정의'인 사회다. 또한 세 나라 중 유일하게 춘추필법에 의한 정사(正史)가 없는 사회였다. 이는 뚜렷한 가치 기준이 없다는 뜻으로 오직 힘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대세사관(大勢史觀)으로 발현됐다. 약자에겐 한없이 군림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비굴할 수 있는 일본의 근성도 바로 여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국제사회에 얌전하게 등장했던 일본이 청·일, 러·일전쟁에 잇따라 승리한 후 국제 사회의 폭군으로 돌변해 급기야 20세기 중반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킨 것이나, 2차 대전 후 패전국이 되자 미국에 납작 엎드린 모습이 단적인 예다.

#. 한중일 삼국의 원형을 자연에 비유하자면 한국은 바람(風), 중국은 물(水), 일본은 불(火)로 표현할 수 있다. 한국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신바람을 일으키며 지내는 민족이다. 반면 중국은 만리장성을 넘어 들어오는 이민족 등 다른 문명조차 중화라는 바다, 즉 큰물로 품어버리는 융합적 원형을 품고 있다. 또 일본은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내건 구호였던 '팔굉일우(八紘一宇, 온 세상이 하나의 집안이라는 의미)'에서 나타나듯 모든 침략과 정복을 정당화해 온 나라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화산 폭발, 지진, 태풍, 쓰나미 등 빈번한 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무수한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과거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겐 20년만 돼도 아주 오래된 과거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과거란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 것이다. 동시에 지나간 일을 자꾸 떠올리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우리에게 늘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 왜곡도 결국 이렇게 과거를 가볍게 여기는 원형적 인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인은 수십 년 수백 년이 흘러도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양국의 역사적 원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과거사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더라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밖에 없고 양국 감정만 악화시킬 뿐이다.

#.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인종적으로나 언어적으로 한 뿌리였다. 그런데 왜 지금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그 기원은 서기 663년 백강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강전투란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왜의 구원병과 백제의 부흥군이 합세하여 지금의 금강 일대에서 나당연합군과 벌였던 전투를 말한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왜군 3만2000여명이 구원병으로 참전한 백강전투는 한·중·일 삼국의 구도를 바꾼 중요한 전투였다. 백강전투에서 패한 백제 세력은 신라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안고 일본 열도로 돌아갔으며 한반도에 대한 악감정의 뿌리는 이때부터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때부터 한반도에 대한 간섭과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 또 백강전투 이후 통일을 성취한 신라는 결국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긴 했지만 중국을 향한 사대의 감정은 끝까지 남았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중국을 상국으로 보는 연원이 됐다. 결국 삼국의 민족적 원형이 바로 이 백강전투를 통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백강전투는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 7세기 동북아 역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한국 역사책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일본의 역사 왜곡을 비난하고 있는 우리가 이 중요한 사건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은 모순이자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로막는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2015년은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 그리고 한일 수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질서의 재편을 앞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 정세는 구한말 이상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역사문제, 영토문제, 외교문제 등과 맞물려 한중일 삼국간의 관계도 점점 더 미묘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삼국 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돌파구는 없을까.

무엇보다 먼저 한·중·일 세 나라의 원형, 즉 뿌리를 이해하는데서부터 그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한국은 신동북아 시대 지정학적 운명을 극복하고 동북아의 중심축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운은….

1927년생. 만 88세의 나이에도 꼿꼿이 서서 강연을 할 정도로 정정하다. 수학은 물론 철학, 역사, 문학, 언어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저서를 잇따라 펴내 한국의 버틀란트 러셀로 불린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거쳐 미국 어번대학원, 캐나다 앨버타대학원에서 각각 공부했다. 이후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 일본 고베대학과 도쿄대학,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등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한국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학교 대학원장,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수학사대전' '일본인과 한국인의 의식 구조' 등 100여권의 저서가 있다. 이날 강연 후 김교수는 자신의 책 '풍수화(風水火)-원형사관으로 본 한·중·일 갈등의 돌파구'(맥스미디어 / 2014년 발행)를 한 권씩 나눠 주었다. 572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으로 이날 강연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내용이 다 담겨 있었다. 관심 있는 분은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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