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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과학자의 세상보기] 독일 화가 뒤러의 ‘멜랑콜리아’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북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인물로 당시 유럽 문명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중간에 위치한 독일 뉴렘베르그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그는 화가이지만 목각, 판화, 유화, 펜화와 수채화는 물론 수학자와 이론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미 20대에 이런 여러 분야에서 명성을 날리고 유럽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제단 장식, 종교화, 초상화 그리고 수채를 이용한 풍경화 등을 남겼다. 유화를 좋아했지만 시간이 많이 들고 작업을 한 만큼 보상이 많지 않아 오히려 판화와 수채화를 무수히 제작했다. 그는 앞날의 미술가들은 종이에 그림을 그릴 것으로 예측했다.

아버지는 성공한 금 세공장이었다. 명장의 딸을 아내로 맞은 그는 아들도 금 세공의 명장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아들은 그림에 소질을 보여 다방면의 미술가로 대성했다. 당시 풍습에 따라 그는 4년간 외국 여행을 하면서 다른 지역 거장들로부터 사사했다. 이탈리아를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그 결과 그는 라파엘, 벨리니, 다빈치 같은 남부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들과도 교류했다. 지금도 여러 기독교인들 가정에 걸려있는 두 개의 남자 손이 포개진 ‘기도하는 손’은 그가 펜으로만 그린 그림이다.

그는 초상화의 대가인데 여러 편의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자신의 내부를 표현하려 했기 때문에 후세에 칸트나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가들은 물론 독일의 후배 미술가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는 1521년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병에 걸렸다. 이 질환으로 인해 그는 죽을 때까지 고생했으며 화가로서의 활동도 위축되었다. 태어났던 뉴렘베르그에서 57세로 사망했다.



그는 1514년 ‘멜랑콜리아’란 작품을 발표했다. 멜랑콜리는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사용하던 말이다. 그 때 소위 ‘4대 체액설’이 의학계를 지배했다. 인간의 몸에는 혈액, 점액, 황 담즙과 흑 담즙이 있어서 이들의 조화로 인해 인간의 감정, 이성 그리고 행동이 지배된다는 학설이었다. 흑 담즙의 활동이 지나치면 ‘멜랑콜리’(장기적인 심한 우울)에 빠진다. 검증을 요구하는 서양 의학계에서 이런 고색창연한 학설은 폐기된 지 오래다. 그러나 멜랑콜리란 단어는 20세기에 들어 Depression으로 대치되기 까지 명맥을 유지해 왔다. (프로이드 조차도 1917년까지 애도와 우울증을 구별하려는 이론 'Mourning and Melancholia'란 논문을 통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어떤 시인이 만일 “가을날 포도 위를 소리 없이 적시는 가랑비, 내 가슴은 멜랑콜리 속으로 침잠한다.”라고 표현했다면 이것은 그냥 우울 상태를 가르치는 시적 표현일 뿐이다.

‘멜랑콜리아’란 판화에는 날개를 접은 천사가 한 건물의 계단에 죽쳐 앉아있는 모습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앞에는 여러 가지 물체들이 있는데 과학이나 예술을 상징하는 도구들이다. 기운이 빠진 그녀의 얼굴은 왼손 주먹으로 고이고 있고 얼굴은 그림자가 드려있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설명하기 힘든 사각형의 문자판이 있으며 모래시계는 이미 절반이 넘어섰다. 마름모 형태의 물체 위에 희미한 해골 모습이 있고 저울은 비어있다. 그러나 상단부에는 무지개가 있고 그 밑에 ‘멜랑콜리아 I'이란 글이 적혀있는데 우울에서 벗어나려는 어떤 희망을 표현한 것 같다.

이 작품을 제작하기 직전, 뒤러는 “무엇이 아름다움인지 나는 모르겠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작가가 성찰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듯하다. 그가 여러 번 자화상을 그린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작가의 ‘영적 자화상’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정유석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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