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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종신형 한인, 그가 만약 무죄라면?

[LA중앙일보] 발행 2015/06/0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5/31 18:41

정구현/사회부 차장

"만약 그가 무죄라면요?" 그 한마디로 의심이 시작됐다. 한 목사님이 전화로 하신 말씀이다. 목사님은 LA다운타운 구치소에서 재소자 사역을 하신다. "한 사람을 1년 반 동안 지켜봤는데 내 생각엔 진범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구치소로 찾아가 '그'를 만났다. 12년 전 한인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라클 마일 살인사건'의 범인 로빈 조(56)씨다.

그는 2003년 5월5일 LA한인타운 서쪽 르네상스 아파트에서 송지현(당시 29세)씨와 송씨의 막내아들 현우(당시 2세 10개월)군, 보모 민은식(당시 56세)씨를 총격 살해한 혐의로 2009년 체포되어 지난해 9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은 논란이 많았다. 증거는 있지만 동기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조씨가 유죄 평결을 받은 결정적인 증거는 DNA다. 범인이 송씨의 입을 막고 손발을 결박하는데 쓴 덕테이프에 라텍스 재질의 비닐 장갑 조각들이 묻어 있었다. 그 조각들에서 검출된 DNA가 조씨의 것이었다는 게 검찰 측 주장이었다. 정황 증거도 조씨에겐 불리했다. 그는 경찰에서 조사받고 나오면서 차 트렁크에 보관했던 탄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는 사건 당일 알리바이도 입증하지 못했다.

-왜 장갑에서 당신 DNA가 검출됐나.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차할 때 장갑을 썼다. 형님이 운영하시던 치과에서 종종 장갑을 가져와 썼다. 장갑은 주차장에 놔뒀으니 누구든 가져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난 범인이 아니다. 제발 믿어달라."

-탄피는 어디서 났고, 왜 버렸나. "2006년인가 2007년쯤이다. 비가 오는 날인데, 골프장에서 종종 마주치던 백인 청년과 라운딩했다. 픽업을 부탁해서 데려다 준 곳이 그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격장이었다. 총 쏘는 곳은 처음이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널린 게 탄피라 몇 개 주웠다. 난 총을 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경찰이 날 범인으로 모는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트렁크에 넣어둔 탄피를 버렸는데 그게 오히려 의심을 받게 했다."

-사건 당일이 기억나나. "아침에 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우들랜드힐스의 자동차 보험회사에 들러 보험을 갱신했다. 그리고 LA로 내려오는 길에 햄버거를 먹었고, 오후에는 한인타운 윌셔길 사무실에서 지인들과 고스톱을 쳤다."

-고스톱 쳤던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우지 그랬나. "오래전 일이라 다들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휴대폰 기록을 조회해보라고 검찰에 제의했다. 위치나 전화기록을 보면 알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것도 오래돼서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

-변호사가 제대로 변호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재판에서 변호사의 첫 변론과 최후 변론은 '내 의뢰인은 무죄'라고 해야 한다더라. 그런데 내 변호사는 재판 내내 그런 말 한마디 없었다. 내가 요청한 증인들도 증언대에 서지 못했고, 나조차도 변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증언대에 오르면 불리하니까 오르지 말라고 하더라."

그의 말을 확인하려 그의 가족으로부터 법정 기록을 넘겨받았다. 핵심 기록만 243페이지다. 읽을수록 의심은 짙어졌다. 억지로 문을 열고 침입한 흔적도 없었고, 현관 앞 신발도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현장에선 범인의 머리카락 한 올 검출되지 않았다. 시신 3구가 발견된 욕실 바닥에는 피 한방울 없었다. 범인은 탄피도 회수해 증거를 철저히 없앴다. 현장을 분석한 수사관들은 "철저히 계획된 범행이고, 범인은 프로페셔널하고 영리한 사람"이라고 했다. 명품시계, 현금 등 사라진 금품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전문적인 솜씨'다.

-아들이 둘이다. 선고 후 무슨 말을 했나. "큰 놈이 한 얘기가. 교황도 저격 미수범을 찾아가 용서했다고 하더라. 누명 씌운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고 했다. 또 몇 달 전에는 아빠 집에 오면 같이 소주 한잔 해요…(울음)"

-현재 판결대로라면 가석방자격이 없다. "포기하지 않는다. 항소를 준비중이다. 대법원까지 간다. 다시 재판받을 수 있는 기회만이라도 얻을 것이다. 제발 내가 증언대에 설 수 있게 도와달라."

사법용어 중 '합리적인 의심(reasonable doubt)'이라는 말이 있다. 경찰이 용의자를 체포해 취조할 수 있는 법적 무기다. 그 논리는 반대로도 적용된다. 용의자가 억울하게 붙잡혔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까지 합리적인 의심은 양쪽 모두에게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만약 그가 무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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