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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머리는 진보, 손·발은 보수

[LA중앙일보] 발행 2015/06/02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6/01 21:06

이종호/논설위원

대학 선배 한 분이 자그마한 이민 교회 담임목사로 계신다. 최근 그 교회가 한인타운으로 이사를 하고 지난 일요일 감사예배를 드린다기에 다녀왔다. 설교 제목이 '왜 진보적인 교회가 필요한가'였다. 가끔 한복 입고 국악으로 민속예배를 드리기도 하는 교회다. 얼마 전엔 이웃 종교도 알아야 한다며 불교.천주교.원불교 성직자는 물론 이슬람교 전문가까지 불러 강의를 듣는 그런 교회다. 이번에도 원불교에서 어떤 어른이 나와 축사를 했다. 진보적인 교회란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이 설교에서 말한 진보는 그게 아니었다.

"확실히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신앙에서는 그것이 진보다."

맞았다. 정직이야말로 진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또 있다. 진보의 본질은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모두가 동쪽을 바라볼 때 혼자 서쪽을 향하는 것 모두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을 때 홀로 지구가 태양을 돌 수도 있지 않을까 고개를 갸우뚱해 보는 것 그런 것이 진보다. 그래서 진보는 태생적으로 삐딱하다.

진보는 보수보다 행복지수도 한참 뒤처진다.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기혼이며 신앙을 갖고 있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은 54%가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반면 독신이고 종교가 없으며 정치적으로 진보인 사람들은 단지 14%만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4배 가까운 차이다. 왜 일까.

진보는 현실에 쉽게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불의와 부정의에 대해 훨씬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를 환경과 제도의 희생자로 여기며 제도와 환경을 바꿔야 그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체제순응적인 보수의 비판과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진보 삐딱이'들은 그 길을 간다. 다수가 보지 못한 길 험하고 불편한 길을 찾아 가며 기꺼이 시대의 이단자가 된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들이 그랬다.

조지 워싱턴 영국 식민지로 모두가 안주하고 있을 때 그는 독립 아메리카를 외쳤다. 에이브러햄 링컨 모두가 노예를 당연시할 때 그는 노예 없는 평등세상을 꿈꿨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 모두가 안 된다는 전국민건강보험을 관철시켰다. 총과 대포 대신 대화와 타협으로 미국 외교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한국 대통령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모두가 빨갱이라 쑥덕댈 때 과감히 북한을 보듬으며 통일의 밑그림을 그렸다. 노무현 세상 모두가 움켜쥐려고만 하는 권력과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이것이 진정한 진보다. 물론 당대엔 온갖 비난과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남과 다른 생각 무모해 보이는 진보의 그런 도전들이 결국 세상을 이만큼이나마 바꾸어 놓았다.

문화와 종교도 마찬가지다. 앙시앵 레짐(구질서)에 항거해 피로 떨쳐 일어났던 프랑스 시민들 그들이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진보였다. 로마 교황의 부패 타락에 맞서 '성경으로 돌아가라'며 분연히 일어섰던 마틴 루터 그 역시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진보였다.

진보를 떠받치는 정신은 이렇게 이성과 합리 열정과 도덕성이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진보는 자꾸 그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진보를 성원한다. 그런데 머리와 달리 손과 발은 자꾸 딴 데로 향한다. 손발을 담그고 있기엔 진보의 공기가 너무 시리고 차가워서다. 진보는 늘 소수다. 때론 왕따도 당한다. 옳은 말 맞는 말을 하는데도 그렇다. 나는 그 이유가 나의 이런 느낌과 무관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변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양심적인 신앙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힘이 듭니다. 함께 모여야 에너지가 생기고 세상을 바꾸는 힘도 생깁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교회가 필요합니다."

'따뜻한 진보'로 선배님의 꿈이 활짝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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