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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LA중앙일보] 발행 2015/06/03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6/02 22:08

김완신/논설실장

2009년 10월 29일 새벽 4시 델라웨어 도버 공군기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항에 대기하고 있다. 얼마 후 C-17 수송기가 도착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비행기 앞으로 걸어갔다. 수송기 문이 열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사자 18구의 유해가 담긴 관이 미군 장병들에 의해 운구돼 나왔다. 양복 차림의 오바마 대통령은 단호한 표정으로 운구가 끝날 때까지 부동자세로 거수 경례를 했다. 당시 아프간 전쟁에서 가장 많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던 시기였는데 동트는 새벽 대통령이 직접 나와 운구되는 관을 향해 경례하는 장면은 국가를 위해 전사한 군인에 대한 최상의 예우였다.

1일 국방부의 전쟁포로.실종자 담당관은 "북한과 외교관계가 개선되면 가장 먼저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 전사자에 대한 유해발굴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에 있는 미군 전사자의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는 임무를 다른 모든 일에 앞서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한국전 이후 자국 참전군인들의 유해 발굴 및 송환에 적극적이었다. 막대한 비용도 기꺼이 감수했다. 1953년 전쟁 직후 46구의 미군 유해를 북한에게서 받으면서 89만7000달러를 지급했다. 그후 유해 송환이 이뤄졌던 1996~2002년 사이 미국은 북한에게 1500만 달러를 주었다. 유해 1구를 위해 200만달러를 지불한 경우도 있었다. 유해 발굴은 2011년 재개됐으나 북한과의 관계 악화로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미국은 지금까지 200여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해, 신원이 확인된 15구를 가족에게 인계했다.

미국은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들의 유해는 반드시 미국으로 가져온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담당부서인 DPAA(Defence POW/MIA Accounting Agency)가 임무를 담당한다. 이전 두 곳의 담당기관이 유해 발굴과 송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자 이를 통합해 올해 1월30일 창설됐다. 전사자와 실종 군인들을 기필코 찾겠다는 의지다.

DPAA 웹사이트에는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냉전시대 전쟁 등에서 전사한 군인을,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된 명단(Accounted- For)과 유해가 돌아오지 않은 명단(Unaccounted-For)으로 나누어 수록해 놓았다. 유해가 회수되지 않으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발굴 및 송환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한국전에서 실종됐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못한 전사자는 총 7856명이다. 베트남 전쟁 실종자 및 유해 미송환 전사자 1627명의 거의 5배다. 이름, 군번, 병과, 계급, 소속부대, 분류(포로.실종.전사) 실종.사망 시기, 미국 고향 주소 등 자세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DPAA의 목표는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No One Left Behind)'이다. 유해가 돼서라도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이 찾겠다는 약속이다.

미국은 비용과 시간에 관계없이 세계 어느 곳에 가서라도 전사자 유해를 가져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명예로운 군대를 갖게 된 것도 자국의 군인을 대우하고 보호하는 이 같은 정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전쟁 당사자이면서도 국군 포로 및 유해 송환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군과 관련해 군기 문란, 방산 비리, 총기 난사 등의 소식이 들리고 군의 기강과 명예는 실추돼 있다. 더우기 청문회 정치인들은 병역미필자가 대부분이어서 한국에서 병역을 마치는 것이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다. 국가가 존중하지 않는 군인에게 자부심이 있을 수 없다.

오는 6일은 정치인들이 국립묘지를 가장 많이 찾는다는 현충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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