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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풍경(a wind bell)

박재욱(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한걸음이 조심스럽다. 고졸한 산사에 감도는 깊은 적막 때문이다. 기실, 무서운 것은 소리 없는 무음이라지만, 이토록 깊고 정갈한 적막은 내심 황홀한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간간이 처마 끝의 풍경이 읊조리는 그윽하고 낭랑한 가락만이 적막을 깨트린다. 아는가, 홀로 듣노라니 풍경소리는 되레, 적막을 점점 깊게 더 깊게 만들 따름이다.

그 적막의 심연에서 생동하는 풍경소리는 감미로운 솔솔바람이 몸소 드러낸 자신의 모습이며, 그를 인연으로 반야(지혜)를 설하기 위해 온몸으로 자아내는 풍경의 자비로운 입짓이기도 하다. 진리의 현현이다.

"온몸이 입이라 허공에 걸려/ 동서남북 어느 바람 묻지를 않고/ 한결같이 모두를 위해 반야를 설하나니/ 뎅그렁! 뎅그렁!" (송나라 천동여정 선사의 '풍경')

반야는 어느 바람인지를 묻지 않고, 한결같이 모두에게 진리를 설하는 무차별, 무분별의 지혜이다. 차별(discrimination)은 인식의 주체가 대상에 부여한 애/증, 우/열, 시/비 등의 이원 대립적 가치와 감정을 말한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집착하고 다른 쪽을 배척함으로써, 차별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종국엔 고통만 남는다. 무차별은 대상을 구분하여 알되, 차이 즉, '다름'으로 인식하는 사유방식이다. 무분별은 이 '차이를 인정한 분별'의 지혜를 뜻한다. 어떤 사물과 정신현상으로 드러난 모습만 다를 뿐, 그 본질은 변하여마지 않는 실체 없는 공성(空性)이며 상호의존적이어서, 모두가 평등함을 통찰한 탈이원법(脫二元)적 달관과 해탈의 경지에서 성취되는 인식작용이다.



삶의 당처인 현상계에서 차별 없는 삶을 살기란 사실 극히 어렵다. 차이를 인정한 분별을 행하거나, 부득이한 차별 속에서 평등을 잃지 않고 평등 속에서 부득이한 차별을 쓸 줄 아는, 걸림 없는 반야지혜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한다.

한편, 풍경은 말없이 말한다. 그 침묵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사무친 자기정화를 통해 탐심과 고착된 편견 등 마음의 독소들을 제거해야 한다. 청정한 마음만이 부당한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 듣고, 풍경소리와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열린 귀로 듣기 위해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깨어 있어야한다. 물고기는 잠잘 때 눈을 뜨고 잔다. 그래서 풍경에 물고기 모양의 추를 달아 놓아 경계를 게을리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롯이 깨어 있으면 서 있는 그 자리가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바로 그 자리, 적멸의 자리, 궁극의 자리이다.

혹여 영적 치매에 걸리지 않고 늘 깨어 있기 위해서는 부단히 마음잡도리하며 무시로 물어야한다. 내가 묻고 내가 답해야한다.

"여보시게, 근자에 살림살이가 어떠하신고?" 허! 소이부답(笑而不答) 그냥 웃고 말지. 뎅그렁 뗑! 뎅그렁 뗑 뗑!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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