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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

오세진/사회부 기자

공자의 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법이 사람을 제압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법이 전부는 아니다. 부끄러움을 알고 반듯하고 떳떳해야 한다."

중국의 정치학자 샤오 꽁취앤(蕭公權)은 이 말을 따라 이상적인 법체계를 논했다. 그는 '중국 정치사상사'에서 '인치(人治)'를 주장했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을 강조한 개념이다. 꽁취앤은 "인의 정치(仁政)가 곧 인치다. 사람이라는 총체적 인격체가 법보다 우선하며, 사람은 법을 초월하는 존재"라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사람답기 위해' 법과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이는 현대 중국법의 큰 틀이 됐다.

공자의 사상이 서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있다. 동국대의 황태연 교수는 "공자 사상이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고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 썼다. 결국, '사람이 법보다 우선'이란 건 동서양에서 보편 타당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법이 사람을 압도했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들이 법을 이용해 힘 없는 서민들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로 여겨지는 장애인들을 공격 도구로 삼는다. 연방 장애인보호법(ADA)을 근거로 장애인 편의 시설을 갖추지 않은 업소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줄지어 제기하고 있다. 최근 LA한인타운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의 횡포다.

원고는 장애인인 히스패닉계 J모씨. 배후에는 한인 변호사가 있다. 이들은 지난달 21일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하는 한인 선모씨를 상대로 장애인 공익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날, 분식점주 이모씨를 상대로도 같은 내용을 담은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어 J씨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이에 대한 수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게 소장의 주된 내용이다. 16가지의 위반 사항이 이를 뒷받침했다. '장애인을 위한 고정된 의자가 없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테이블에 없다', 테이블 높이가 규격에 맞지 않는다' 등이다.

맞다. 법에 어긋난다. 법을 미리 따져보고, 법에 따라 시설을 갖췄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 보다 법'이란 인치의 논리에는 맞지 않는다. 장애인의 공익 소송이라기보다는 장애인 공익을 빙자한 손해배상 소송이다. 법을 이용해 돈을 뜯고자 하는 의도가 보여서다. 일부 변호사들에 따르면 법을 잘 아는 변호사가 장애인을 설득해 공익 소송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손해 배상금을 나눠 갖자는 제안에 장애인들이 쉽게 넘어 간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변호사는 "특정 원고, 변호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공익 소송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피소를 당한 이들은 한인 영세업자들이다. 낯선 미국 문화와 서툰 영어 때문에 이민 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겨우 먹고 살 만해지자 차린 음식점 하나. 이들의 삶의 전부다. 원고 측 한인 변호사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오히려 이들의 상황을 더 잘 알고 별다른 저항도 못할 것이라 여긴 게 아닐까. 공익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다면 소장으로 위협하기보다는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고 개선 방법을 알려주면 될 일이었다.

분식점주 이씨는 기자에게 억울한 사연을 들어줘 고맙다며 김밥 한 줄을 쥐어줬다. "다행이네요 기자님. 법이란 게 무섭기만 했는데 이렇게 우릴 보호해 주는 법도 있다니." 꼭 잡은 두 손에서 '사람다움'을 느꼈다. 사람 위에 법이 있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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