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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의 소중함 깨닫고 떠납니다"

[사람 속으로]KCS 코로나경로회관 영양실장 은퇴 김양실씨

29년간 172만5000그릇
"여생도 봉사하다 가야지"


172만 5000그릇-. 29년간 그의 손을 거친 따뜻한 밥이 한인과 중국계 등 우리 커뮤니티 일원들의 배를 채워준 숫자다.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코로나경로회관에서 밥 한끼의 소중함을 지난 29년간 전해온 김양실(87·플러싱) 영양실장이 은퇴했다. 30일 마지막 밥상을 차린 후 KCS 본부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론 김(민주·40선거구) 뉴욕주하원의원으로부터 하원이 주는 감사장, 김광석 KCS 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김 실장(이하 김씨)은 “다행히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서 이렇게 긴 세월을 일할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경로센터를 방문하는 노인과 가정급식 배달 서비스를 받는 이웃들을 위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새벽 6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따뜻한 밥상을 차려온 그는 “처음 시작할 때는 우드사이드의 한성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드리고 일을 시작하느라 매일 아침 5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섰는데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김광석 KCS 회장은 “김 실장님이 그만두신다고 해서 우리는 이번에도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며 “정말 KCS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 주신 분이라 그 공헌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론 김 의원도 김씨를 ‘숨겨진 영웅(unsung hero)’이라고 표현하며 축사를 전했다.

김씨는 “누가 뭐래도 한평생을 참 열심히는 산 것 같다”고 했다. 6·25 전쟁통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평안북도 선천에서 세 살배기 딸(멜라니 우·69) 하나 들쳐업고 남한으로 내려온 그는 열심히 딸 뒷바라지를 했다. 1986년 딸 내외를 따라 도미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도 포목점·목욕탕 등을 운영했을만큼 사업에 잔뼈가 굵었다.

“처음 미국에 오자 마자 KCS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50대였기 때문에 내가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는 그는 “얼떨결에 식당 자원봉사자로 일을 시작해 파트타임을 거쳐 정규 직원이 된 뒤에는 영양사 업무부터 서류 작업까지 다양한 일을 참 많이도 했다”고 회고했다.

딸 멜라니는 “엄마가 힘들게 일하시니까 그만 두시라고도 했었는데 일에 대한 ‘소명’ 같은 것이 있으셔서 말릴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은퇴식장을 찾은 회원들은 하나같이 김씨의 손을 잡으며 “정말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음식 맛이 달라지면 어떡하냐”며 축하 겸 이별 인사를 했다.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도 꽤 있었다. 윤상화 권사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30년 가까운 세월을 헌신적으로 일하신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영양실장으로서 은퇴이지만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KCS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며 “이제 건강이 예전 같진 않지만 그동안 못해본 여행도 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손주들도 보러갈 계획이지만 KCS에는 동무들 만나러 매일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삶의 목표를 묻자 29년을 묵묵히 헌신해 온 그의 입에서 시원스런 대답이 바로 튀어 나왔다.

“뭐 별 거 있어, 봉사하다 죽어야지.”

황주영 기자

hwang.jooyoung@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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