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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신랑 존과 신부 마이클(II)

[LA중앙일보] 발행 2015/07/0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6/30 20:56

김완신/논설실장

2004년에 '신랑 존과 신부 마이클'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2004년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매사추세츠주가 동성간 결혼을 허용한 해다. 매사추세츠 대법원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했다.

당시만 해도 충격적인 결정이었고 반발은 거셌다. 법원에서도 '동성간 결혼(Same-sex Marriage)'이라는 말을 자제하면서 '시민 결합(Civil Un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결혼을 남녀의 결합이 아닌 사회적 제도로 인식한 것이다. 동성애자 부부에게도 세금공제, 가족 건강보험, 유산 분배 등에 있어 이성 부부와 동등한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 결합'의 취지였다.

매사추세츠추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한 지 11년이 지난 2015년 6월26일, 연방 대법원은 전국 50개주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의 결정은 매사추세츠 이후 11년 만이지만 동성애 커뮤니티에서는 1969년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스톤월 인(Stonewall Inn)' 시위가 있은 후 46년래 최대 '사건'이라 말한다. 스톤월 인 시위는 동성애자들이 뉴욕경찰의 주류판매 단속이 게이클럽을 타겟으로 한 것에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으며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이 시위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출발로 평가되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지금까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지 않은 14개 주도 이를 인정해야만 한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측은 결혼의 의미를 훼손한 중대한 오판이라고 비난한 반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모든 국민들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미국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연방대법원이 성소수계 인권 역사에 이정표를 세우는 판결을 하게 된 이면에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큰 작용을 했다. 1996년에는 불과 27%만이 동성결혼에 찬성했는데 2014년에는 59%로 크게 늘었다. 최근 퓨리서치 조사에서도 '자식이 게이라면?'이라는 질문에 '걱정하거나 당황하지 않겠다'고 답한 부모가 57%로 나았다. 1985년 조사의 9%와 비교하면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류가 지금껏 지켜온 이성결혼의 전통과 규범을 동성애자에게 강요할 수 없고 성소수계자들의 권익도 보장돼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진 것이다.

동성애는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기준으로 규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정신과의학회는 지난 1973년에 정신과 질환 진단 매뉴얼에서 동성애를 삭제했고 92년에는 동성애 행위를 차별하지 말 것을 공식 요청했다. 동성애를 유발하는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도 결론이 없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태생적인 '성적 지향성'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반대론자들은 동성애가 환경적 영향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현재 시점에서 동성애의 원인 논쟁은 의미가 없다. 또한 개인의 호불호에 근거해 재단할 사안도 아니다. 동성결혼과 관련해 2004년 칼럼을 쓸 때만 해도 동성애 자체를 언급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동성결혼에 대해 찬반의 의견을 밝힌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고 비난도 감수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5년 다시 동성애를 쓰면서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편해진 느낌이다. 동성애를 대하는 관용의 폭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불과 10년 남짓한 세월에 세상은 많이 변한 것 같다.

혼인신고서의 '신랑(Bridegroom) 존과 신부(Bride) 마이클'도 이제는 '신청자1(Applicant1) 존과 신청자2(Applicant2) 마이클'로 쓰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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