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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같은 문제 다른 해법의 한·미 정치

[LA중앙일보] 발행 2015/07/06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7/05 18:08

김 동 필/선임기자

며칠 전 퇴근 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한국의 모 방송국이 제작한 대담 프로그램이었는데 한창 논란이 뜨거웠던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주제였다.

자칭 정치 평론가라는 한 출연자가 "대통령이 아버지, 당 대표가 어머니라면 원내대표는 장남쯤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도는 짐작할 만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황당한 비유인가.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 간의 문제를 가부장적 사회의 가치로 가볍게 치환해 버리다니. 나름대로 순발력은 있었을지 몰라도 결과는 본인의 한심한 수준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다. 자격 미달 평론가에게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삼권(입법·행정·사법) 분립의 원칙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기일 뿐 맹목적 충성심만이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지난 달 초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가 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환태평양경제협력체(TPP) 관련 법안 처리 과정에서다. TPP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2기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추진중인 아젠다다. 대통령의 특별 관심 사항인 셈이다.

그런데 오히려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노동계의 반발을 의식해서였다. 그리고 그 맨 앞에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있었다. 펠로시 원내대표가 누구인가. 2008년 대통령 선거 당시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인물 아닌가. 그 후에도 공화당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오바마케어 법안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는 등 오랜 정치적 동지 역할을 했다. 그러니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TPP 관련 법안은 1차 투표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한국적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선택한 해법은 달랐다. 한국이 압력과 버티기의 양상으로 진행됐다면 미국은 설득과 원칙의 메커니즘이 작동했다. 법안 부결 직후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진행하는 법안에 왜 반대했나"는 질문에 펠로시 원내대표는 "법안이 완전하지 않았고,법안이 통과되면 일부는 득을 보겠지만 피해를 보는 국민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어 "국민의 우려를 대신해 표현한 것일 뿐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해 의원들은 국민의 대리인들(representatives)이고, 그것이 우리의 직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강단있는 소신과 원칙 앞에 오바마 대통령도 실망했다거나 배신감을 느낀다는 등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펠로시 원내대표는 물론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전방위 설득작업을 벌였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물론 관련 부처 장관들과 백안관 비서실장, 주요 비서관들까지 합세했다. 결국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법안은 대통령의 바람대로 통과됐고 대통령과 펠로시 원내대표 모두 승자가 됐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워낙 구조가 다양한데다 선거 과정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때마다 저조하기 짝이 없는 투표율을 보면 과연 제대로 된 정치인을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그러나 이번 일을 보면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견제와 균형, 설득과 타협의 원칙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직도 정치인 중에 존경받는 인물들이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혹자는 미국에 비해 한국의 의회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기 때문이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는 아닐 듯 하다.

양국의 땅덩어리 크기만큼이나 정치의 수준차가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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