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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허무와 무상의 차이

[LA중앙일보] 발행 2015/07/07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5/07/06 20:03

박재욱 / 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방실방실 잘 웃기 때문인지, 방실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가수의 노래, '서울 탱고'의 일부이다. 듣노라면 방실방실 웃을 수만은 없는 노랫말인 듯 싶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 다 모두 다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 같은 것/ 그냥 쉬었다 가세요.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 다 잊으시구려"

치명적인 유혹이라고 불릴 정도로 격정적이고 관능적인 춤을 촉발시키는 탱고의 리듬과는 달리, 노랫말은 인생을 달관한 듯한, 쓸쓸함과 허무의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한잔 술에 온갖 시름 잊으라 하니 그 위무의 배려가 고맙다.

허무의 감정은 삶이 무의미할 때 찾아온다. 허무는 일반적으로 기존의 것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매우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이라 뜻매김한다. 허무주의 철학에서는 삶에 대한 의미의 상실을 평범하고 보편적인 가치체계의 몰락이며 삶의 전복으로 규정한다. 절망과 비관에 휩싸이면 삶을 포기하거나 파탄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허무가 지닌 함정이다.

또한 생의 끝자락에 서면, '갑'으로써 권력과 명예와 부를 누리며 충분히 산 삶이나, 언제나 초름한 결핍과 굴종으로 신산한 '을'을 산 삶이나, 도긴개긴 '소쿠리에 물을 담으며 달려온 세월'과 다름 아니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참으로 덧없이 왔다 떠나는 뜬구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허무와 고만한 말이 무상(無常)이다. 불교는 무상을 주장하기에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무상은 변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것은 변화의 흐름 속에 있기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 존재의 속성에 대한 무지로, 영원성을 갈망하거나 그를 믿고 집착하던 것들이 속절없이 변하고 말면 깊은 허무감과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체념하거나 비관하여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교가 뜻하는 무상이 아니다.

무상인 변화는 에너지다. 무엇으로 되게 하는 생명력이기에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된다. 그래서 무상을 허무라는 냉혹한 부정 뒤에 오는 창조와 진화의 긍정적 개념이라 하는 것이다. 무상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허무를 딛고 일어서지 못할 때 절대 허무가 되고 만다. 무상의 긍정적 의미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허망한 집착을 버리고 허무를 극복하여 행복하라는 것이 불교의 메시지이다.

더불어 무상한 세월이기에 이 귀한 하루하루를 삼가며 결 고이 갈무리하면서, 건강하고 향기로이 살다, 늙되 낡지 않고 건강하게 늙어, 건강하고 자신 있게 '전변(轉變)의 문'(죽음)을 나서야겠다. 그리하면 언제나 여기가 극락인 것을. "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작자 미상의 선시에서)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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