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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모른 척 하든가, 품어주든가

[LA중앙일보] 발행 2015/07/11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7/10 19:39

정구현/사회부 차장

늙고 병들어 가족이 보고싶었다. 한국 떠나온 지 40여 년이 지났다. 원양어선을 타고 미국에 왔다가 눌러앉았다. 처음엔 아내와 자식들을 초청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먹고 사는 게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은 받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은 해결되지 않았다. 낮에 몸을 써서 일했고, 밤엔 녹초가 됐다. 쳇바퀴 생활이 계속됐다.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상의 반복처럼 매번 같은 갈등 속에 40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일흔을 넘겼다. 이제와서 염치 없지만,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 싶었다. 몰던 고물차를 팔아 1000달러를 들고 무작정 LA로 향했다. 총영사관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다. 담당 영사를 만나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다.

기다리는 시간은 곤욕스럽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 며칠이 지나 영사가 연락해왔다. 가족을 찾았단다. 반가운 소식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가족분들이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죄송하네요." 가고 싶은데, 오지 말라고 한다. 여기 남으려고 해도 남을 수도 없다. 어디로 가야할까.

얼마 전 총영사관 영사에게서 들은 사연이다. 이 노인을 가슴에 담아둔 것은 단순히 딱하다고만 볼 수 없어서다. 결말에 실망하기 전에 이미 그는 여러 차례 넘어져야 했다. 이민 생활의 현실과 재외동포 지원의 한계, 한인 단체들의 무관심이 가족을 찾는 과정에 놓인 돌들이었다.

미국에 40년을 살았어도 그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이민자 대부분이 그렇다. 내야만 하는 돈이 버는 돈이었다. 이젠 소셜연금으로 살고 있다. 늙고 힘 없어지니 이제 와서 가족을 찾느냐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늙고 힘없기 때문에 가족이 생각났다. 담당 영사는 노인의 마음을 이해했고, 가족을 찾아줬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가족이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에 노인은 그래도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단다. "내 나라에서 눈감고 싶다"는 게 이유다.

담당 영사의 일이 복잡해졌다. 민원의 성격은 가족 찾기에서 노인의 정착 지원으로 바뀌었다. 한국 복지부에 의논해 보니, 노인의 생계를 책임질 일은 막막했다. 물론 한국에는 무연고자들을 받아주는 비영리 기관들이 있지만 그 기준에 노인은 해당되지 않았다. "한국내 독거 노인이나 노숙자들의 수요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한국 기관들 입장에서 노인은 한국 국적자라기 보다는 40년 넘게 미국에 살아온 이방인이었던 셈이다.

LA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며칠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렇게나 많은 한인 단체들 중에서 그를 돕겠다는 단체가 없었다. 담당 영사가 주선할 수 있는 노인의 거처는 하숙집뿐이었다. 하숙방에서 노인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만 더 확실해졌다. 담당 영사는 노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어렵게 꺼냈다. "딱한 분들이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셸터가 한인 커뮤니티에 있으면 좋겠는데…."

이 노인 이후에도 비슷한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쉼터의 필요성을 아쉬워했다. 치매를 앓는 70대 노인이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노인은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다행히 지문조회로 신원을 찾아 여권을 만들었고, 한 성당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거주할 한 기관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무작정 가족을 찾아달라는 민원은 어쩌면 생떼일 수 있다. 또 어떻게 그런 노인들까지 한인단체들이 일일히 다 챙길 수 있느냐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노인들은 달리 찾아갈 데가 없다. 모른 척 하든가, 품어주든가 선택은 둘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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