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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동성애 깃발의 '소리없는 아우성'

[LA중앙일보] 발행 2015/07/13 미주판 8면 기사입력 2015/07/13 09:17

김석하/사회부장

깃발은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헝겊 한 장에는 집단의 생각과 의견, 목표 등이 펄럭인다. 시인 유치환은 깃발을 가리켜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정조 11년(1787년)에 만들어진 군인 교련서 병학지남에는 "깃발은 색으로 신호하는 것이고, 북은 소리로 신호하는 것이다.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눈으로 보고(깃발), 소리로 들을 뿐(북) 누구를 막론하고 입으로 명령하는 것은 절대로 듣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극에서 '공격하라'는 장군의 명령을 듣고 병사들이 돌격하는 장면은 허구인 셈이다. 깃발은 권위이자 구심점이다.

미국의 두 깃발이 운명을 달리하고 있다.

남부연합군 깃발은 내려왔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유지를 주장하며 북군과 맞선 남부연합군의 깃발이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사당에서 53년 만에 영구퇴출됐다. 평등과 인권, 자유라는 미국의 이념에 맞지 않다는 여론이 자부심의 깃발을 끄집어 내렸다. 전날 의회에서 공화당이 이러한 상징물도 지켜야 할 전통 가운데 하나라고 반박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까지 들이댔지만 대세는 기울었다. 전통의 몰락.

올라간 깃발도 있다. 무지개 깃발. 지난달 26일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무지개 깃발로 펄럭였다. 무지개의 다양한 색깔은 성소수자들의 다양성을 대변한다. 처음은 197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에서였다. 길버트 베이커가 팝 명곡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이다. 진보의 급부상.

깃발의 교체는 정신적 격변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돌이켜보면 한국도 깃발의 변화 속에 사회 자체가 변하는 경험을 했다. 2002년 월드컵. 태극기는 권위와 위엄의 상징에서 내려와, 자유와 다양성의 상징으로 올라갔다. 나라의 상징이자 엄숙한 대상인 태극기를 뺨에 그리고, 치마로 두르고, 우산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멀리 바라보던 태극기를 액세서리, 상품화했다. 처음엔 낯설어 하거나 혀를 차던 기성세대도 대세를 거부할 수 없었다. 오히려 곧바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시대의 흐름은 작은 틈을 비집고 물꼬를 터 도도한 본류가 된다.

남부연합기야 미국이란 나라의 특수성이라고 치지만, 무지개 깃발의 흐름은 두고 볼 일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 결혼식을 올린 동성커플은 혼인신고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하면서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에 혼인의 자유와 혼인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한국 여론(80%)은 동성결혼을 허용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수치는 미주 한인사회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된다.

무지개 깃발이 처음으로 등장할 때, 게이로 첫 시의원에 당선된 하비 밀크는 이렇게 말했다. "동성애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나는 지독한 이성애자인 부모와 선생님, 사회체제에서 가르침을 받았는데 왜 이성애자가 되지 못한 겁니까?" 성적 지향이란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세상의 다음 주인은 밀레니얼 세대(80~96년생)다.

'Think different'의 컴퓨터와 모바일폰에 길든 새로운 종족. 온라인으로 접촉해 소리없이 문자로 대화한다. 이들에게 동성애자는 과거 여성, 흑인, 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차별받는 소수계일 뿐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될 개연성이 크다. 동성애(결혼)를 반대하는 사람은 종교적이든, 윤리적이든, 종족번식이든 반대 이유를 드러내놓고 강력하게 소리친다. 하지만 깃발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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