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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백제유적과 일본 군함도

이 종 호/논설위원

올 봄 한국 방문 때 부소산성 낙화암에 들렀었다. 백제 마지막 임금 의자왕이 삼천궁녀와 함께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애잔한 전설이 깃든 곳이다.(물론 역사적 사실은 아니다) 산성은 박물관 입구 쪽부터 깔끔하게 단장돼 있었고 등산로도 깨끗이 정비되어 시민의 휴식처로 사랑받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백제'라는 이름이 주는 처연함 때문이었던지 30년 전 중학교 수학여행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한적한 선물 가게도 그렇고 조악한 기념품도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요즘 한국은 어딜 가나 흉물 아파트로 도시 경관이 엉망인데 비해 이곳은 아파트가 적어 아직도 산과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제발 이대로 잘 보존되었으면 했다. 온 나라가 아파트 흉물로 변하더라도 이곳만이라도 자연친화적인 역사 도시로 남기를 빌었다.(속으로는 이곳에 집이나 땅을 사 두면 나중에 노후 보내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부여 부소산성을 비롯해 공주, 익산 일대의 백제 유적지 8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세계유산은 모두 12개가 됐다. ①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②서울 종묘 ③경주 석굴암.불국사 ④서울 창덕궁 ⑤수원화성 ⑥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⑦경주 역사유적지구 ⑧조선왕릉 ⑨경상북도 하회와 양동 역사마을 ⑩남한산성, 그리고 이번에 지정된 ⑪충남 전북 일대의 백제 역사유적지구 등 11개는 문화유산이다. 자연유산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하나다. 모쪼록 이번 세계유산 지정으로 그동안 열악했던 백제 유적지의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되고 백제 문화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기쁜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따라 온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의 현장이었던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 탄광과 나가사키 조선소 등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 23곳도 이번에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한국이 그토록 반대했고 세계 여론에도 호소했지만 결국 일본의 뜻대로 관철됐다. 등재 결정문이 아닌 각주에 '노동을 강요했다(forced to work)'는 문구가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일본은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강제노동(forced labor)'은 아니었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일본의 '꼼수'에 당한 꼴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의 깊은 뜻은 인류 평화와 공존의 정신을 기리고 지키자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일본의 강제노동 현장이 세계유산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오히려 더 악명 높은 곳도 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집단 학살 현장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그 예다. 그러나 거기엔 진실과 참회, 반성과 행동이 전제돼 있었다. 이번에도 그걸 기대했다. 하지만 일본에게 그런 양심은 끝내 없었다. 오히려 교묘한 화술로 과거를 미화하고 왜곡하고 합리화했다.

문제는 그것이 먹혀들어간다는 사실이다. 미국도 알면서 넘어가고 유네스코도 모른 척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유가 있다. 바로 일본의 돈이다. 지금까지 유네스코 예산의 22%는 미국이 분담했다. 하지만 2011년 팔레스타인의 유네스코 가입 이후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10.8% 분담금을 내고 있는 일본이 사실상 1위다. 독일(7.1%), 프랑스(5.6%), 영국(5.2%)이 그 다음이다. 한국은 1.9%로 일본의 5분의 1 수준이다. 유네스코 직원도 일본이 프랑스 다음으로 많다. 정책결정과 운영에 일본이 그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국제관계도 돈과 인맥이 크게 좌우한다. 이번 세계유산 등재 과정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미 기차는 떠났다. 흥분 원망도 뒤로 돌려야 한다. 대신 플랜B, 즉 새로운 대응책을 도모할 때다.

돈이 역사마저 좌지우지하는 살벌한 세상이다. 우리끼리 천날만날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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